니겔 로스펠스 지음·이한중 옮김 지호 발행·1만5,000원'동물원'(Zoo)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1800년대 초였다. 런던동물학회가 설립되면서 처음 쓰였다. 물론 바빌로니아 중국 그리스 고대문명과 네로 황제 등 전제군주 시절부터 19세기까지도 정복한 땅에서 이국 동물을 수집해 전시했으나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군주들의 개인 동물원인 '미네저리'(menagerie)가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권력과 부의 과시를 위해 만든 것이라면 오늘날 동물원은 과학, 교육, 위락, 보호를 위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탄생'은 근대적 의미의 동물원을 설립하고 발전시킨 독일의 칼 하겐벤트(1844∼1913)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선 중개상이던 그는 어느날 상어 그물에 걸린 물개 여섯 마리를 '인어'라고 부르며 함부르크에서 전시한 것을 계기로 이색 동물 전시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그가 창살과 우리 대신에 해자를 두르고 동물을 전시하도록 한 동물원이 오늘날 생태 동물공원의 효시이다.
동물 전시가 시들해질 무렵인 1870년대 중반 그는 토착 원주민들을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린란드와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 호주 식인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전시장에 넣어둔 '사람 동물원'을 만든 것이다.
그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젖먹이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열광했다. 파리 전시 때에는 하루 5만 명이 입장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이때 인류학자들은 원주민들의 나체를 관찰하고 사진자료로 남겨 체계적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성의 유방과 생식기 모양에 대한 종족별 연구'도 이때 나왔다. 원주민들이 관람객을 바라보며 동료 인간으로 소통하기 시작한 1931년에야 '사람 쇼'는 막을 내렸다.
하겐베크가 자신의 동물을 무척 아꼈다고 하지만 어린 동물을 포획하기 위해 수십 마리의 어미들을 죽이고 돈벌이를 위해 사람까지도 동물원에 넣은 것을 보면 악랄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원주민 문화를 보여준다는 명분 아래 그들의 나체를 공개한 것은 범죄행위에 가깝다. 몰래 카메라로 찍은 포르노 비디오테이프 등이 넘치는 현대사회 전체가 '창살 없는 동물원' 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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