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가을에 익듯 클래식 음악이 무르익는 것도 가을부터다.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 들어서야 클래식의 참 맛을 알게 되기 때문일까. 올해도 9월부터 찬 바람이 부는 초겨울까지 클래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가들의 공연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정통 클래식은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울림을 느끼며 듣는 게 제 맛이다.가을의 낭만을 느끼려면
가을에 빠질 수 없는 아티스트가 라트비아 출신의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 KBS1 FM과 신나라미디어가 내놓은 기획음반 '가을'을 기억하는 음악팬이라면 갈란테가 부른 '아베마리아'를 떠올릴 수 있다. 우수에 젖은 깊은 목소리가 가을이면 호소력을 더한다. 10월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9―5743
영화 '디어헌터'에서 클래식 기타의 선율에 실려온 '카바티나'는 아직도 음악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 주인공인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10월7일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바로크에서 현대까지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앙코르를 외치면 '카바티나' 선율을 관객에게 선사할지도 모른다.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와는 동명이인이다. (02)2005―0114
세계 3대 테너가 있지만 독일 가곡 '리트'는 페터 슈라이어가 최고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우스꽝스럽다. 슈라이어는 은퇴한 하이 바리톤인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함께 독일 가곡의 양대 산맥이었다. 피셔―디스카우의 '겨울나그네'가 인생을 달관한 모습을 노래한다면 슈라이어는 청아한 미성으로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담는다. 그 '겨울나그네'를 10월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들려준다. 70이 가까운 나이여서 국내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른다. (02)541―6234
늦은 가을에 접어들면 첼리스트 요요마가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전한다. 11월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얼마전 발매한 음반 '라 벨르 에포크'의 수록곡이 중심이다. 1900년대의 파리를 뜻하는 이 말처럼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인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포레의 '소나타 A장조',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 연주는 당대의 파리 분위기를 풍긴다. (02)720―6633
중후한 오케스트라의 향연
추석을 지나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 출연하는 독일 피아니스트 게르하르트 오피츠가 눈에 띈다. 연주곡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 장조'. 브람스 만년의 고독과 우수가 녹아있는 가을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오피츠의 연주는 묵직하고 깊이가 있어 독일식 피아노 연주의 정수를 보여준다. (02)399―1741
2003년 하반기 외국 교향악단 내한 연주 중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30일과 10월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921년 창단된 레닌그라드 필이 구 소련 몰락 후인 91년 도시와 함께 이름이 바뀐 이 오케스트라는 38년부터 88년까지 50년 간 악단을 이끌어 '지휘대 위의 독재자'라는 별명이 붙은 고(故) 에프게니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정통 러시아 레퍼토리 연주로 불후의 명반을 다수 녹음했다.
이번에 내한하는 유리 테미르카노프도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다. 바이올린 협연자인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도 눈길을 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300주년을 맞아 내한하는 이 교향악단의 공연은 정상의 러시아 음악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바이올린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등을 연주한다. 한국의 차세대 피아니스트 임동혁군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수상거부 파문을 딛고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을 협연한다. (02)580―1130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국내에 최초로 내한하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앙상블도 눈길을 모은다. 11월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을 고루 받은 룩셈부르크의 특성처럼 레퍼토리도 독일과 프랑스 음악이 함께 한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등. 미샤 마이스키는 슈만의 '첼로 협주곡 a단조'를 들려준다. (02)751―9606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