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 /사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 /사형

입력
2003.09.06 00:00
0 0

카를 브루노 레더 지음·이상혁 옮김 하서 발행·9,000원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쿠엔틴 형무소. 살인미수죄로 1분 뒤 사형이 집행되기 위해 가스실 의자에 묶여 있던 바버라 그레이엄이 갑자기 집행 연기 통보를 받았다. 죽는 순간까지 무죄를 주장한 그레이엄은 결박이 풀리자마자 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형무소장은 그녀를 얼른 깨워야 했다. 다시 연기를 취소하라는 통지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세 차례, 결국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사형 집행 명령을 내렸다. 그레이엄은 차라리 죽음을 맞는 게 더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사형은 민주주의 국가가 사법 제도의 틀 속에서 개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엄중한 처벌이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다(I Want To Live)'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실화를 보면 과연 사형이 얼마나 정의를 반영한, 정확하고 분명한 처벌인지 의심할 만하다.

사형은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폐지되었지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 독일의 저술가인 저자는 사형 폐지론을 담은 이 책에서 현대의 사형이란 결국 야만을 법치로 포장한 데 불과하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형은 인간사회에 가장 오래된 형벌의 하나이며 그 근원은 '피의 복수'와 '인신 공양'에서 찾을 수 있다.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는 죽음을 안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보복 논리와 개인의 불안이나 죄책감, 또는 공동체의 불쾌감을 발산하는 일종의 종교 처형에서 사형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고대와 근대로 나누어 사형의 종류를 살피는 데 할애했다. 추방과 돌로 치기, 낭떠러지에서 떠밀기, 십자가형, 교수형, 참수형, 사지 찢기, 생매장, 화형 등은 주로 고대의 처형법이었다. 그 뒤를 이어 좀더 세련된 사형의 수단인 기요틴, 전기의자와 가스실, 총살 등이 등장한다.

책의 결론은 역시 사형이 왜 폐지돼야 하는가이다. 사형이 범죄 억제 효과가 있다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이미 사실이 아님이 입증됐다며 저자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사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사형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 독재자나 독재 정권은 이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사형은 '억압된 충동이 발산의 계기를 요구하는 심리의 심층'에서 비롯했으며 '사형은 사형수를 통하여 발산하고자 하는 집단적 죄책감과 불안감을 위한 안전판'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수단이 사법이라는 가장 이성적인 제도의 틀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형제도 뒤에 숨겨진 집단 의식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