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9월5일 흔히 '캘커타의 테레사'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가 87세로 작고했다. 인도 정부는 이 위대한 성직자의 죽음을 국장(國葬)으로 애도했다. 그의 유해는 생전의 테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 본부의 마더 하우스에 묻혔다.진정으로 위대한 성직자에게 국적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세속의 호사가들에게는 더러 그런 것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마더 테레사는 서른아홉 살 때인 1949년 이래 인도 시민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태어난 그를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우기고 싶은 국민은 여럿일 터이다. 마더 테레사가 태어난 1910년에 스코페는 오스만투르크제국에 속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스코페를 포함한 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됐고, 1991년 유고가 여러 나라로 갈라진 뒤 스코페는 독립국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니 마케도니아를 포함해 옛 유고 연방을 이뤘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나 터키 사람들은 제각기 마더 테레사를 제 나라 사람이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알바니아 사람들에게는 더 큰 권리가 있을지 모른다. 마더 테레사는 마케도니아의 소수 인종인 알바니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더 테레사에게 가장 커다란 일체감을 느끼는 국민은 인도 사람들일 터이다. 생전의 테레사가 건넨 사랑의 손길은 6대주 전체에 미쳤지만, 19세 때 로레토 성모수녀회의 일원으로 캘커타에 처음 도착한 이래 테레사의 삶은 이 도시를 중심으로 궤적을 그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가 이 도시에 처음 세운 사랑의 선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의 진정한 벗이 되었고, 그 사랑의 실천을 전세계로 확산해 왔다. 마더 테레사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올해 10월19일에는 바티칸에서 시복(諡福)될 예정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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