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나 게임은 항상 유행을 탄다. 전자오락에도 다양한 게임이 유행했지만 10년을 넘게 인기를 끈 종목은 없다.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게임이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열광시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하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인기 불멸의 놀이도 있다. 서양에는 포커가 있고, 중국에는 마작이 있듯, 한국에는 고스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도박성이다. 그러나 도박 이전에 규칙을 가진 엄연한 놀이이다.
화투나 고스톱의 태생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19세기 일본에서 도입됐다는 것이 가장 지배적인 설이다. 사실 화투에 등장하는 그림에는 왜색이 짙은 것이 많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벚꽃(3월)과 8광의 그림이 일본이 배경이며, 비광에 나오는 무사도 일본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는 고스톱이라는 놀이가 아예 없다. 그렇다면 굳이 고스톱이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 한 전문가는 “왜색문화 때문에 고스톱을 없애자고 한다면 차라리 무늬를 우리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고스톱은 한국적 정서의 반영
왜 고스톱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을까. 우선 한국인의 좌식(左式) 문화와 연관이 있다. 식사와 잠을 바닥에서 청하는 전통이 배어있어 판깔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침대와 식탁문화가 익숙한 서양인들이 포커를 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인들이 모였을 때 즐길만한 놀이가 없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전통놀이중 하나로 윷놀이가 있지만 규칙이 너무 단순하다. 화투 한 목에 방석만 있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간편함도 작용했다.
단 한판을 돌아도 점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성격에 잘 맞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고스톱은 시대상의 반영
고스톱의 묘미는 치는 사람에 따라 규칙을 정하기 나름이라는 데 있다. 수백년동안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 포커와 구별되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가변성이 위정자에 대한 풍자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역대 대통령의 특성에 따라 생겨난 대통령고스톱은 물론, 5공화국 실세들의 정권비리가 터졌을 때 유행한 오공비리고스톱, 아웅산 폭파사건을 비유한 아웅산고스톱,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사건을 빗댄 삼풍고스톱 등 역사적인 사건이 생길 때 마다 그에 맞는 규칙이 생겨났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도박의 성격이 짙다?
고스톱의 폐해는 물론 중독증이다. 놀이가 아니라 직업이 된다면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또 불로소득의 심리를 조장한다는 차원에서도 고스톱은 백해무익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적지 않다. 단도박협회 한 관계자는 “고스톱은 다른 놀이에 비해 중독성이 특히 강하기 때문에 일단 발을 붙이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며 “따라서 처음부터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건전한 놀이로의 전환이 필요
그러나 여전히 고스톱 인구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터넷 고스톱열풍까지 불면서 이제는 직접 상대방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도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고스톱 무용론만 주장하기에는 생활속에 너무도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고스톱백과사전을 펴낸 이호광(53ㆍ칼럼니스트)씨는 “고스톱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놀이를 찾기 힘든 것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전제하고 “고스톱을 무조건 배격하기 보다는 건전한 놀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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