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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45> 한일교류전 뒷얘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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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45> 한일교류전 뒷얘기②

입력
200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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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문화교류 2인전' 일본 전시회는 2002년 1월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미술관은 세계적 미술관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그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이 미술관 3층 전시장은 최첨단 시설을 갖추었으며 규모도 크고 천장에서 자연광선이 들어와 아주 쾌적하다. 내 그림은 밝으면 밝을수록 좋게 보인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좋아보이는 그림은 일종의 사기이다.나는 그 원리를 알고 있었기에 밝으면 밝을수록 좋아 보이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 효과가 여기서 나타났다. 변화가 많은 다양한 색을 완벽하게 조화되도록 한 색깔은 밝은 자연광선 아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파리 뤽상부르 미술관 전시가 성공적이었던 것도 자연 광선이 내 작품을 제대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도쿄예술대학 미술관 전시장에 그림을 걸어보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그림이 빛을 발했다. 관장이 "서울에서 전시했을 때보다 훨씬 좋다"며 "혹시 다른 작품이 아니냐"고 놀라고, 히라야마 화백의 부인도 "이 작품들이 서울 전시에서 본 그 작품 맞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어두운 전시실에서는 내 작품의 미묘한 빛깔의 조화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개막식 날 귀빈 800여 명이 찾아와 전시장을 메웠고 거기에는 장관도 3명이나 있었다. 나는 인사말을 통해 솔직하게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게 꼭 바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동양 정신을 담은 작품으로 서양 작가들과 대항해야 할 텐데 서구 사조만 뒤쫓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서양의 문화적 식민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12년 동안 살며 겪었던 미국 화단의 문제점과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미국 미술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이룩한 결과입니다. 미국은 추상 위주로 교육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한 가벼운 미국 미술을 모방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좀 더 심각하게 창조적 예술을 생각할 때가 됐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지켜보았던 일본 사람들의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와 동시에 같은 동양인에 대한 무시를 지적하고 싶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 주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런 것을 일본 사람들도 속으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날 내가 터뜨려 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공감이 박수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 뒤 일본 일간지들과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나에게 서양에 대응해 동양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우리가 서양의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뛰어넘고, 동양이 갖고 있는 정신세계를 작품 속에 계발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감각의 깊이보다 손재주가 뛰어난 작가를 우선시하고 있다. 이것을 타파하고 감각적으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표현할 수 있을 때 가장 철학적이며 호소력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동양의 힘이다. 여기에 동양정신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중국의 상아 공예는 기가 막히게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 예술이 되려면 빈틈없는 솜씨도 중요하지만 예술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 새롭게 창조적인 자기 표현을 해야 한다."

이런 내 이야기가 여러 신문에 실리고 심지어 '동양 철학으로 시작하는 현대예술'이라는 제목의 사설로도 언급됐다.

처음 전시를 기획할 때는 한·일 감정이 좋지않은 때였다. 나는 한상익 선배가 교관하고 싸웠을 때 일본인 동료 학생들이 한 선배를 감싸주었던 일을 상기하며 우리가 미워할 것은 제국주의자들이지 우리를 이해하는 많은 문화인들까지 미워해서야 되겠느냐고 역설한 바 있다. 이 전시회는 처음에는 관람객이 하루에 1,000여 명 정도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2,000명, 3,000명으로 늘어나더니 전시가 끝날 무렵 4,000명을 넘어서 전체 입장객은 5만 9,299명에 이르렀다. 당시의 일을 회고하면서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이 전시회에 협조했던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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