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정계진출에 성공한 화교 여성인 사르샹(沙日香) 전 미 캘리포니아주 풀러턴시 시장이 내정됐다는 홍콩 발 외신이 눈길을 끈다.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행정장관에 임명됐던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 양빈(楊斌)이 낙마한 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빈은 지난 해 9월24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정령을 통해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취임 회견에서부터 신의주를 천지개벽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4,000만평의 신의주 주변에 장벽을 세워 20여만명의 주민을 소개하고, 2년 후 50여만명 규모의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평양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한 채 유럽식 사법제도 적용을 통해 투자분위기를 조성하고, 의회역할을 할 입법의회 의원도 절반 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신의주를 북한의 홍콩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특구 구상은 때마침 추진되고 있던 북한의 경제개혁조치와 맞물려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 하지만 보름이 채 못돼 양빈의 얘기는 허풍임이 드러났다. 탈세와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중국측은 양빈이 중국의 실정법을 어겼기 때문에 체포한 것이며 신의주 특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중국이 양빈의 문제점을 북한에 미리 알려주었는데도 김정일이 임명을 강행했다는 등의 뒷 얘기가 흘러나왔다. 중국이 신의주 특구를 못마땅해 한다는 해석도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양빈은 희대의 사기꾼이 됐다. 그는 지난 7월 선양(瀋陽) 중급인민법원에서 사기와 분식회계 등 6가지 혐의로 18년 형을 선고 받았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해 중국 제2의 부호로 평가됐던 재산(9억달러)도 대부분 날아갔다. 법정에서 통곡을 하며 무죄와 정상참작을 호소했으나 허사였다.
■ 북한이 1년이 다 되도록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북한다운 처사다. 그러나 신의주 특구가 북한 경제개방의 상징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개방의 지연으로 인한 고통은 인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양빈의 후임으로 사르샹을 임명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르샹 기사는 간헐적으로 나온 내정보도 중 하나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임명되더라도 양빈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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