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우리나라가 'IMF 체제'에 들어서면서 휘청거릴 때 예술의전당 황동렬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기 김포군청에서 어린이 미술강좌를 열려고 하는데 며칠간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김포군이 200명을 목표로 모집광고를 내고 1주일 정도 홍보할 예정이었는데 2시간 만에 400명이 모여들었다. 나는 400명 모두를 받아들여 미술의 기초에 대해 가르쳤고, 이 경험으로 나는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그 후 나는 황 부장을 찾아가서 '꿈나무 교실'을 열고 여기서 영재를 뽑아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대단히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98년 예술의전당에서 '김흥수 꿈나무 교실'이 탄생했다. 그런데 첫 회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하자마자 3,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전화신청을 받았는데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문의전화가 많았던지 신청을 받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도저히 귀가 아파서 못하겠다며 이틀 만에 그만두기까지 했다. 국가 경제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와중에 어린이 미술교육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끈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우리나라 부모들의 극성을 감안하더라도 창조적 미술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처음에 지원한 3,0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한꺼번에 가르칠 수 있는 시설도 여력도 없어서 50명씩 나누어서 토요일마다 가르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함께 온 학부모들에게도 왜 창조적인 미술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 강의를 하였고 끝난 후에는 따로 학부모와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그림을 벽에 붙이고 작품 하나하나의 장단점을 평가해 주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내가 수업 시간에 지시봉을 찾으러 창고에 들어갔다가 이젤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 팔이 부러져 한동안 깁스를 하고 가르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정했던 3,000명 중 1,500명을 겨우 가르치고 '꿈나무 미술교실'을 끝내야만 했다. 그러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그 동안 지도한 1,500명과 추가로 오디션을 본 300명의 어린이 중 120명을 뽑아 99년 예술의전당에서 김흥수 영재미술교실을 시작했다.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을 철저하게 교육시키면 장차 우리나라 미술이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되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영재미술교육을 나의 마지막 남은 천명이라고 여겼다.
처음 영재교육을 시작하면서 학부형들은 커리큘럼에 대해 걱정하며 잇따라 문의해 왔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발견하여 커리큘럼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만 해도 우선 하나의 창조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이 교실까지 들어와서 아이들의 그림에 대해 이것 저것 간섭을 하고, 아이들도 그림은 안 그리고 엄마를 찾는 것은 창조교육에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우선 학부모부터 학생들의 실기교육에 이것 저것 간섭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색과 톤을 조화시키는 것을 감각교육의 기본으로 하였고 아이들의 창조력과 더불어 상상력을 이끌어 내어 아이들 스스로 자기 생활체험에서 나오는 화상을 찾아가도록 시도해 보았다.
이렇게 하여 1년이 지나고 아이들 작품을 가지고 전람회를 했는데 뜻밖에도 내가 생각했던 수준에 못 미쳤다. 그래서 2년차부터는 기본교육에 하모니즘 교육을 함께 시도해 보았다. 예를 들어 화면을 분할하고 각각의 칸에 그림을 그려 넣게 하였다. '정월'이라는 주제를 내고 그 정월에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게 하여 그 하나하나, 예를 들어 눈사람 윷놀이 등 관련 내용을 그리게 했는데 하모니즘의 원리인 이질적 조화, 다시 말해 어두운 것과 밝은 것, 찬 것과 따뜻한 것처럼 이질적 요소를 조화시키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까 그림을 한 장 그리면서 아이들은 복합적 상상력, 구성력을 발휘하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년 교육 받은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내가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사실은 나의 하모니즘 개념을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나름대로 재미있게 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또 그것이 아이들이 멀티감각을 체득하고 상상력을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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