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검찰의 현대, SK그룹 비자금 수사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이들 두 그룹이 2000년 총선과 2002년 대선과정에서 수십억∼2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에게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재계가 또다시 검찰의 수사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검찰은 현대, SK외에 다른 기업들도 권 전고문에게 비자금을 준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다른 그룹들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재계는 대북송금 의혹 및 분식회계 혐의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현대와 SK의 비자금 스캔들처럼 털어서 먼지 안 나올 데가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대선의 경우 주요 그룹들이 계열사를 통한 법정 허용한도 안에서의 기부금 기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정치보험' 차원에서 수억∼수십억원씩을 제공했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거액의 정치자금은 분식회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점에서 비자금 파문이 확산될수록 기업들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설비투자 등 경영활동도 더욱 움츠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가 외환위기 이후 경영투명성 제고와 고비용 정치구조 청산을 내걸고 불법부당한 정치자금 제공 중단을 선언하는 등 자정(自淨) 선언을 했지만, 개별기업과 기업인들은 여전히 분식회계 등의 방법으로 '검은 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재계의 정경유착의 단절선언은 '헛된 구호'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총선레이스가 본격화할 경우 '실탄'요구도 급증할 것으로 우려,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S그룹 관계자는 "정치권의 선거자금 개혁이 선행되지 않는 한 기업들의 비자금 조성을 통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 폐단은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1일 "정치권의 합의를 전제로 한시적인 특별법을 만들어 과거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고해성사를 통해 '사면'해주고, 향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하는 정치권의 선거자금 개혁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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