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란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미디어'다. 죽은 자의 영혼이 영매의 몸을 빌려 산 자에게 말을 건네는 게 터무니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도 다큐멘터리 '영매(靈媒)―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감독 박기복)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5일부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하는 '영매'는 3년 간 공 들여 만든 작품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갓 스물 넘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아들이 무당의 입을 통해 울며 대화하는 대목이나, 동생 당골(세습 무당) 채정례가 죽은 언니 당골 채둔굴을 기리는 씻김굿을 하는 대목은 소름 끼치는 감동을 유발한다.
그러나 박기복(38) 감독 혼자서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야 했을 정도로 극장에 걸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촬영이 고되자 스태프는 열흘 간격으로 하나 둘 사라졌다.
박 감독은 "김대례씨의 씻김굿을 본 뒤 감동을 받았다"며 "원래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제작 동기를 밝혔다. 그는 그 동안 빈민, 노숙자, 부랑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다. 그는 "2000년 6월 진도에 내려가 그분들이 신성시하는 곳엔 얼씬거리지도 않고, 작두를 갈 때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더니 그분들이 먼저 '왜 주저하느냐'며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세습 무당인 당골과 무당, 그 고객들과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는 과정이 없었더라면 이런 다큐멘터리를 찍어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지인과 조금만 삐끗해도 나를 내모는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 3년 간 고생했고, 그런 고생을 한 만큼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자매 당골의 씻김굿 등을 찍을 수 있었다." 박 감독은 그러나 신 내린 무당이 닭 목을 비틀고, 돼지 피를 빠는 장면 등이 관객의 눈에 혹시라도 선정적으로 비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그의 우려와 달리 '영매'는 결코 선정적이지 않다. '영매'는 씻김굿이 이생의 맺힌 한을 풀기 위한 산 자들의 몸부림임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때로 이 정직함과 바다 냄새 가득한 사투리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다. 굿을 둘러싼 삶의 현장에 너무 밀착한 나머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무당의 예언을 흘려 들어 뒤에 의뢰인의 아들이 급사하게 되었다는 등의 진술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흠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한국적 무속 의식에 대한 진지하고 집요한 성찰로 보아서는 작은 얼룩에 불과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설경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5일 개봉.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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