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정말 너무 한다' 싶으면 배지와 유니폼을 벗고 조용히 뒷문으로 데려가 타이르기도 합니다." 흔히 보안 요원하면 우람한 체격에 무술이 뛰어난 건장한 남성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신세계 백화점과 이마트에 가 보면 전혀 보안 요원 같아 보이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 이른바 미녀 보안 요원들. 이들은 남성 요원들이 하는 본연의 경비 업무는 물론이고, 여성 고객을 상대로 한 고객만족 서비스까지 담당해야 하는 그야말로 팔방 미인들이다. 1997년 에스원에서 분사한 경비·보안업체인 SUHO시스템 소속인 이들 미녀 삼총사는 불순한 사람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지만 고객들에게는 더 없이 든든한 존재다.이마트 고잔점에서 근무하는 김수진(28) 주임은 소탈하고 대범한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보안 요원이다. 자신의 적성과는 딴판인 비서학과를 나온 김 주임은 지방은행에서 근무하다 외환위기 때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겠다'며 보안업체에 지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 대표 선수를 비롯해 태권도, 국술 등으로 탄탄한 체력을 다진 김 주임은 털털한 성격에 화장도 즐기지 않지만 빈틈없는 일 처리로 인정을 받고 있다.
신세계 본사 경비를 맡고 있는 이정원(29)씨는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 요원. 광주 송정여상을 나온 이씨는 고교 때부터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했을 만큼 타고난 끼를 지니고 있다. 한 때 호텔 근무를 하다 바텐더 자격을 획득, 강남과 목동에서 인기 바텐더로 이름을 날렸던 활동파다. 그는 수려한 외모 때문에 사내외에서 남성들의 주목을 받지만 실제로는 4살 난 아들을 둔 주부 요원이다.
입사 막내인 홍지영(28·신세계 강남점 근무)씨는 어릴 때 골목 대장을 했고 학창시절에는 체육부장을 도맡았던 타고난(?) 요원 재목이다. 조용한 성격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넓이뛰기, 던지기 등 육상 선수로 나서 도내 대항전 2위까지 차지했을 만큼 운동 신경이 남다르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홍씨는 일찌감치 보안요원을 꿈꾸다 지난해 뜻을 이뤘다.
이들 미녀 요원들의 임무는 매장 내 보안과 질서를 유지하고 고객 안전을 확보하는 일. 특히 매장 내에서 고객과 직원, 그리고 고객 간에 소동이 일어나거나 분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앞장서서 해결하는 게 가장 큰 임무다. 이들은 근무처가 유통업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절취 사고를 처리할 때 가장 큰 곤란을 겪는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 같은 추석 연휴나 설 연휴 직전이 절취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라고 귀띔했다.
김수진 주임은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생각보다 도난 사고가 빈번이 일어난다"며 "마음만 먹으면 절취 고객을 하루 몇 명씩 잡아낼 수 있지만 서비스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고객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자 직원들도 겁이 나거나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를 부르는데 보안 책임을 맡아서인지 두렵거나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홍지연씨는 "경비를 하다 보면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고객과는 맞서지 않는 게 요원들의 불문율"이라며 "최고의 보안, 경비 노하우는 소동을 최소화 한 채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정원씨는 "청소년들 중에 여성 보안요원이라고 우습게 보고 반말을 하며 달려들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며 "어떤 상황에서든 웃는 얼굴로 고객을 대하는 보안 요원들의 이면에는 말 못할 고통과 인내가 따른다"고 말했다.
여성 보안 요원들은 외부의 생각처럼 호신술이나 격투기를 따로 배우지는 않는다. 주로 여성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신체단련 교육보다는 서비스 교육에 주력하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유사시를 대비해 기본적인 호신술 정도는 연마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 이들은 "자신을 비롯해 누군가를 지킨다는 경호업무는 두려워하지 않고 얼마나 담대하게 상황을 받아 들이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폐점 후 매장 정리까지 마친 오후 9시까지 거의 12시간으로 일반사무직 보다 길다. 더구나 하루 종일 긴장한 상태에서 선 채로 근무하기 때문에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이런 노동 강도에 비해 급여는 1년차가 월 120만원 정도로 넉넉한 편이 아니다.
여성 보안요원들은 "위험하고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없지 않지만 고객 안전을 최일선에서 지킨다는 보람이 크다"며 "열악한 국내 여성 보안 요원들의 위상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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