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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경제 으뜸은 정책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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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경제 으뜸은 정책 신뢰다

입력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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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1·4분기에 이어 4∼6월의 2·4분기에도 경제성장률이 내려감으로써 한국 경제가 불황국면임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 성장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단기적으로는 수요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 수요는 쉽게 말하면 물건을 사려는 생각이다. 수요자에는 가계와 기업 그리고 해외수요자가 있어 이들의 지출이 각각 소비와 투자 그리고 수출이 된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수출은 괜찮을 것으로 보이나 소비와 투자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성장에 있어서 수요보다 공급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공급은 쉽게 말하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선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과 자본의 증가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인구의 증가와 교육수준의 향상, 그리고 해외자본의 활용이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 인구 증가율이 줄어들고, 국내 교육수준이 내려가고, 투자가 우리나라에서 경쟁국들로 옮겨가는 등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있어 이런 추세를 돌이키지 못하면 성장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더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력과 자본의 증가보다 기술 발전이 더 중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MIT의 로버트 솔로우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909년에서 49년까지 미국 노동자 1인당 생산량 증가의 80%는 기술 발전에 의해서 설명된다고 한다. 1인당 자본량의 증가는 20% 정도만 생산성 증가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아시아 경제위기가 닥치자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노동력과 자본 증가에 의한 성장으로 깎아 내리고 성장 잠재력이 한계에 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도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술 발전이 더 중요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기술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투자 없이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단기적 수요보다도, 노동력과 자본의 증가보다도, 기술발전보다도 경제성장에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경제활동의 틀을 정해주는 제도적 환경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정책이다. 소비자든 생산자든 어떤 동기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동기를 유발하지 못하는 제도 아래서는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졌지만 제도가 다르고 정책이 달랐기 때문에 한 쪽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다른 한 쪽은 경제의 붕괴를 체험하고 있다. 미국은 80년대 중반까지 경쟁력이 저하되었으나 정부의 과감한 규제철폐 정책으로 금융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뒷받침함으로써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되었다.

흔히들 시장경제 하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줄어든다고 말하지만 실은 정부의 역할이 달라진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시장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적용하기 위한 많은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든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든 정부가 정한 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민간부문이 안심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해 나갈 수 있다. 거시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물가안정이든 경기진작이든 정부의 정책의지가 분명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국가 안보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성장에 필요한 자본유치가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한국 경제성장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수요의 부족도 아니고, 노동력과 자본의 부족도 아니고, 기술발전의 애로도 아니다. 정부의 정책 불안정성이다. 한국호는 지금 조타수 없는 배처럼 흘러가고 있다. 항로를 바로 잡아야 할 사람들은 선상의 패싸움에 휩쓸려 본연의 임무를 잊고 있다. 항해를 맡았으면 패싸움에 이기는 데 진력할 게 아니고 배가 제 방향으로 가도록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할 게 아닌가.

채 수 찬 미 라이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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