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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분열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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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분열의 시대

입력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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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매몰돼 살다보면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구조적인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해 미시적인 대응을 하는 수가 많다. 예컨대, 이혼율 상승이나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 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경제 생활의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떻다'는 식으로 사람 탓을 하는 게 그런 경우일 것이다.정치와 정치 참여의 구조적인 변화가 우리 정치와 삶에 미치는 영향도 제대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불러 일으킨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지 인터넷의 힘이 막강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인터넷이 어떤 질적 변화를 가져 오고 있는지 그걸 따져 보아야 할 것 같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인터넷은 탈(脫) 중심적인 매체다. 그로 인한 장점이 아주 많다. 엘리트가 독점해온 언로(言路) 구조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이름 없는 보통사람들에게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인터넷은 대단히 민주주의적이고 민중적인 매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에 명암(明暗)이 없는 일은 없는 법이다. 이른바 '동전의 양면 이론'이 인터넷에도 적용된다. '분권'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분열'이다. 인터넷은 분열을 촉진시킨다. 인터넷은 무정부주의 그 자체다. 양심적이지만 힘이 없는 선량한 사람들만 인터넷을 통해 발언하고 서로 힘을 합치는 게 아니다. 예전 같으면 각자 고립되어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극우 성향의 사람들까지 인터넷을 통해 뭉치고 그 뭉친 힘으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시도한다.

이익집단도 마찬가지다. 전엔 기껏해야 형식적인 회보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이익집단의 구성원들은 수시로 인터넷에 들어가 다른 회원들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이익 도모를 위한 발언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실천을 위한 행동을 기획한다.

인터넷은 자유롭다. 상하(上下), 안팎, 공사(公私)의 구분이 없다. 전엔 사적인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었을 법한 전투적인 발언들이 거침없이 발산된다. 그런 발언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은밀함의 유대'를 만끽하면서 세(勢)를 불려나간다. 세가 커지면 사(私)는 공(公)이 된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분열의 매체가 아니라 통합의 매체가 아닌가. 아니다. 분열과 통합과 분열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고립된 개인들을 통합시킨 가상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분열이 일어나고 딴 살림을 차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상 공간에서의 딴 살림 차리기는 아주 쉽기 때문에 타협과 통합을 위한 노력은 사실상 배제된다.

가상 공간에서의 전투성과 분열은 현실 세계에 곧장 반영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나 수긍을 얻어낼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발언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전문가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전문적 지식마저도 이데올로기와 당파성의 하위 요소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혼란은 증폭된다.

지금 우리는 그런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정열의 속성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분열의 정열은 곧 다른 것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인터넷은 무정부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분열에 대한 의연함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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