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전통 장례 풍습을 연극화한 '다시라기'(사진)가 23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다시 낳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거움을 갖는다'는 뜻의 다시라기는 상가에서 출상 전날밤 상주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전통 연희다. 국립극장 극장장을 지낸 고(故) 허규씨가 1979년 직접 진도에 내려가 잊혀져 가던 연희의 원형을 희곡 작품으로 되살렸다. 죽음을 웃음과 해학의 미로 승화시킨 이 작품에 대해 극작가 이윤택은 " '오구―죽음의 한 형식'은 '다시라기'라는 빼어난 작품 없이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다시라기꾼인 가상주, 사령, 넙쭉네, 봉사는 '상주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를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물리친다'는 극의 줄거리를 재담과 익살로 풀어간다. 가상주는 "애비 송장을 팔아" 돈 좀 벌어보겠다며 넉살을 피고, 전문 곡쟁이 넙쭉네는 애를 밴 상태임에도 남편인 봉사 몰래 저승사자와 눈이 맞는다. 저승 사자는 "요즘 저승에도 불경기라 있는 녀석은 흥청망청 쓰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생활이 말이 아니야"라며 세태를 비꼰다. 죽음을 둘러싼 해학과 통렬한 풍자의 퍼포먼스는 저승사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봉사가 숨을 거두고 동시에 넙쭉네가 아이를 낳는 걸로 끝난다. 죽음이 존재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다시 낳는' 하나의 과정임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연극의 하이라이트다.
초연 당시 주역을 맡았고 이번 공연에서는 예술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현(극단 민예 대표)씨는 "작품이 무대에 처음 오른 지 3일 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었고, 80년 5·18 민주항쟁 직후에 광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며 "자살이 판을 치는 이때 '죽음을 위로하는' 작품을 다시 공연하게 돼 묘한 감정이 든다"고 털어 놓았다.
진도 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씨에게 직접 사사 받은 전승자 김승덕이 연출을 맡았다. 92석 규모의 작은 실내 공간은 구성진 진도 다시라기 가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만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무르익지 않은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공연은 대학로 마로니에 극장에서 9월4일부터 28일까지. 문의 (02)744―0686.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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