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이 경영권에 위기감을 느끼며, 잇따라 자기회사의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특히 최근 한국증시에 외국인투자가 크게 늘면서, 지금까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해온 이들 총수들은 지분율이 낮은 우량 계열사들이 적대적 인수합병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주가 낮을 때 사들이자
현대차, 한화, 코오롱, 두산, SK케미칼 등이 최근 들어 잇따라 대주주 지분율을 늘리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7일 현대차 주식 70만주를 사들이면서 지분율을 4.4%로 늘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28일 한화증권 주식을 처분하고 한화유통이 보유 중인 한화주식을 291만9,000주를 사들이면서 지분이 22.69%로 늘어났다. 지난해 말까지 김 회장의 한화 지분율은 12.95%에 불과했다. 이에 앞서 이웅렬 코오롱회장과 이동찬 명예회장도 5월 코오롱 주식을 추가 매입, 지분율을 19.83%까지 늘렸고, 박용만 두산 사장도 지난달부터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하고 있다.
이수희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융자를 통한 대규모 자본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증자를 통해 투자자금을 마련해왔는데, 이 때문에 국내기업 오너들의 지배구조가 취약해졌다"며 "하반기 들어 세계경기가 회복기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국내증시에 외국자본이 몰려들게 돼, 지배구조가 취약한 우량기업이 미리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분율 30%미만기업 비상
증권 전문가들은 "국내 상장사 중 대주주 지분율이 30% 미만인 기업들은 사실상 M&A에 노출돼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최근 삼성물산, 동국제강, LG상사, 삼보컴퓨터, 한솔제지, 효성, 대우자동차판매 등 20여개 기업을 상장회사 중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M&A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고 발표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48%에 육박하는 현대차의 경우 대주주인 현대모비스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22.5%에 불과하다. 현재 지분율 10.46%로 2대주주인 다임러크라이슬러가 5% 추가매입권한을 행사해 1대주주가 되고 외국계 펀드의 지분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한다면 최악의 경우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삼성물산은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외에 6명의 특수관계인 지분이 13.1%(3월31일 현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면 이 회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31%가 넘는다. LG상사도 구본무 회장을 비롯, 35명의 특수관계인 지분이 16.66%이며 한솔제지도 이인희 고문 등이 19.72%의 지분을 보유, 대주주 지분율이 낮다.
현대자동차 고위관계자는 "다임러 측에 여러가지 루트로 지분 추가매입의사를 확인해 보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추가매입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분율을 꾸준히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해 적대적 인수합병과 관련된 불안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수희 소장은 "최대주주 지분율이 최소한 30%정도는 되고, 우호세력 등을 합쳐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경영권을 확실히 방어할 수 있지만 기업규모가 커지면서 이 같은 지분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며 "최근 외국자금의 한국 증시유입은 원화강세 등에 따른 단기투자 성향이 강한 만큼 당장 적대적 인수합병이 현실화하지는 않겠지만,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내부유보금 등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설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