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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갈수록 짧아지는 책의 목숨

입력
200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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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가 펴낸 '2003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나온 출판물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가 늘어난 3만 6,185종이다. 이 많은 책들이 독자의 선택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경쟁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기울일 시간은 충분치 않다. 나오자마자 바로 주목받지 못하면 서점 매대에서 얼마 못 가 사라진다. 애써 숨은 책을 찾는 독자가 아니면 그대로 잊혀진다. 끝내 버림받은 책은 출판사로 반품된다. 교보문고의 경우 반품은 신간이 나온 지 6개월에서 1년이 지나 이뤄지고, 반품률은 평균 8% 쯤 된다.짐작보다 낮은 숫자 같은가.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대중적 독서물은 보통 일 주일 안에 승부를 건다. 그 동안 시장의 반응이 없으면 비참한 최후를 예감한다. 반면 학술서 같은 전문적 책은 수요가 적지만 꾸준해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속도전을 치르듯 독자의 시선 끌기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책의 목숨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나온 지 1년만 지나도 헌 책방에나 가야 구할 수 있는 책이 부지기수다. 출판물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서점에서 직접 책을 고르기가 지금보다 쉬웠고 따라서 좋은 책은 좀 더 긴 호흡으로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의 홍수를 이루는 요즘은 책 고르기도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좋은 책이 묻혀버릴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일본에는 '신 고서점'이라는 게 있다. 신간을 읽고 갖다 주면 일정액을 보상해주고, 그렇게 사들인 책을 정가의 반값에 팔고, 한참 지나서도 안 팔린 책은 다시 헐값으로 파는 서점이다. 책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이러한 장치는 출판 시장이 크고 중층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버림받은 책의 무덤은 어디일까. 제지공장이다. 폐지로 처분되는 것이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그런 책들이 제지공장의 대형 탱크 안에서 물과 함께 섞여 돌아서 걸쭉한 펄프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책 한 권이라도 그걸 만드느라 베어졌을 나무가 슬프지 않게 정성껏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덧없다, 책의 운명이여!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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