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속편이 많은 한 해였다. 굵직한 것만 꼽아도 '매트릭스2' '터미네이터3' '미녀삼총사2' '툼 레이더2' '나쁜 녀석들2'에 이어 '패스트 & 퓨리어스2'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올 여름까지 치열한 속편 전쟁 중 과연 가장 빛나는 성과를 올린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어떤 속편이 반드시 존재했어야 했을까. 영화 팀 기자가 속편을 두고 얘기를 나눴다.기자1 올해 개봉한 속편 중 기대 수준이 가장 높았던 영화는 '매트릭스2'였지. 1편은 네오가 거리에서 전화를 하고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끝나고, 노래도 마침 '웨이크 업'이 흘러 나왔잖아. 이런 것을 생각하면 2편은 당연히 나왔어야 하는 거지. 물론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긴 했지만.
기자2 그 다음으로 기대가 큰 것은 아무래도 12년 만에 나온 '터미네이터3(T3)'였을거야.
기자1 예매율도 '매트릭스2' 못지 않은 75% 정도로 나왔으니까.
기자2 그런데 T3는 영화 완성도에 대한 기대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너무 늙은 것을 다 아니까 '대체 그가 어떻게 나올까'하는 호기심이 강했던 것 아닐까. 그러니 '매트릭스'는 기대감, 'T3'는 호기심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듯.
기자2 실제 관객동원 결과도 그랬잖아.
기자1 '매트릭스2'는 전국 360만명, T3는 전국 248만명. 서울 관객만 따지자면 T3는 1991년에 개봉한 T2의 91만명에 못 미치는 84만명에 그쳤지. 결국 '매트릭스'는 1편보다 2편 관객이 늘어났지만, '터미네이터'는 3편 흥행이 2편만 못한 셈이었지.
실망 준 지적 블록버스터
기자2 '매트릭스2'도 적지 않은 실망을 주었어. 매트릭스 역시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법칙에 굴복하고 만 것 같아.
기자1 하지만 4㎞나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찍은 차량 추격 장면 등 기술적 진보가 있었고, '매트릭스 놀이' 등 관객들이 '매트릭스' 속으로 빠져 들어갈 여지를 준 것은 사실이지.
기자2 확실히 '매트릭스'가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T3'의 파괴력을 훨씬 앞선 것 같아. 이를테면 '매트릭스'를 모른다면, 그야말로 지성인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잖아. 학자들이 분석서를 잇달아 내면서 그야말로 문학과 철학, 영화, 애니메이션이 한 덩어리가 되는 '지적 블록버스터'가 된 느낌이지. 어찌 보면 거대한 손이 매트릭스의 흥행을 조종한다는 느낌까지 들더군. '흥행의 매트릭스' 속에 빠져들다?
기자1 올 여름 블록버스터들은 관객들에게 조금 안일하게 다가선 면이 없지 않은 듯해. '매트릭스2'도 주인공의 애정행각, 시온에 대한 도식적 묘사 때문에 팬들이 실망했을 듯. 그래서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박스오피스에서 6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데 비해 '매트릭스2'가 3주간 1위를 한 것이 최고이고 나머지 속편은 고작해야 1주 만에 1위 자리를 내주었지.
그래도 장사는 된다 & 자동차 액션 진보
기자1 블록버스터는 기대치와 인지도 자체가 높다는 것이 2편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일 것. '툼 레이더2'는 1편 130만명, 2편 114만명, '미녀삼총사'는 1편이 101만명, 2편이 157만명이니 흥행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지.
기자2 그럼 결국 속편이란 아무런 진보가 없어도 전편의 존재만으로 장사가 어느 정도는 된다는 얘기네.
기자1 올해 블록버스터의 특징은 별다른 기술적 진보가 없었고, 자동차에 굉장한 공을 들였다는 인상이야. '매트릭스2' '터미네이터3' '나쁜 녀석들2' 모두 예외 없이 자동차 도로를 만들거나, 장기간 빌려서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했지. '패스트& 퓨리어스2'는 아예 자동차 마니아를 타깃으로 삼은 것 같고.
최고와 최악
기자2 올해 나온 속편 중 최고와 최악을 꼽는다면?
기자1 '매트릭스2'는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여러 문화현상을 영화를 통해 바라보게 했다는 점에서 손을 들어주고 싶어. '툼 레이더2'는 관객만족도, 완성도에서 골고루 떨어지는 듯.
기자2 '오락성'을 기준으로 꼽는다면 최고는 '나쁜 녀석들2', 최악은 '툼 레이더2'가 될 듯해. 물론 '매트릭스2'는 괜찮기는 했지만 실망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아. 특히 '매트릭스 3'에서 가장 우려되는 결말은 '네오 역시 매트릭스의 바이러스였다'야. 이런 결말이 3편에 나온다면 난 스크린을 찢어 버릴 거야. 3편까지 봤는데 '뻥이요'하는 식이라면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기자1 독립영화 출신, 또는 변방 출신 감독이 최근 블록버스터를 맡는 것은 할리우드가 부딪친 상상력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할리우드식 궁여지책이 아닐까.
기자2 난 그래서 속편은 아니지만 TV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헐크'가 재미 있었어. 블록버스터의 뻔한 동선을 깨려고 하니까. 속편이란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는 개구리 같지. 아! 개구리!
기자1 속편이란 할리우드의 금권지향이 지병으로 앓게 되는 나태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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