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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민주주의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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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민주주의 담론

입력
200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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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를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서구 선진국과 우리는 역사적 배경과 토양이 다르므로 정치도 달라야 한다'며 총력을 다해 유신(維新)체제를 '한국의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라고 국내외에 선전했다. 온갖 비상대권을 다 가진 대통령을 국민의 직접선거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체육관 선거'로 뽑았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 민주정치의 기본원칙조차 무시한 것을 두고 민주주의라 억지를 부렸으니….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식의 대통령중심제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문득 옛날 일들이 떠올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월이 세 차례나 지났으니 우리 사회도 많이 달라진 것이 당연하겠지만,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물론 결코 나쁜 방향으로 달라져온 것은 아니다. 다만 노 대통령의 말이 그 시시비비를 떠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눈 앞에 놓인 손익계산을 잠시 잊고,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한번 진지하게 얘기해봤으면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노 대통령의 당선과 더불어 비로소 '민주주의 담론'을 여는 제약이 풀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기형적인 대통령중심제의 통치방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가 되고 또 집권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수당이 되었으며, 그래서 대통령이 국회를, 나아가 사법부를 지배했던 식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이전 정부 때까지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대통령이 여전히 '힘의 우위'에 의한 권위적 통치를 좋아할 때 '민주주의 담론'을 가로막는 터부(taboo)는 남는다.

혹자는 지금의 달라진 상황을 '국가적 혼란'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일처리 미숙이나 갈팡질팡하는 정책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옛날의 '일사불란한 질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고 이익집단이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못본 척 지나치거나 일도양단(一刀兩斷) 식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다. 원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끄러운 것이 자연상태에 가까운 법이다. 조용하고 또 안정돼 보이는 사회를 찾겠다면 독재국가에 가서 찾는 게 훨씬 빠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만족할 만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노 대통령도 각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익집단중의 하나일뿐 국가지도자로서 중재역할을 못하고 있다. 사회가 어느 정도 시끄러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언젠가는 사단(事端)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는 식으로 인내하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경제적 여력도 없다.

그것이 미국식 대통령중심제가 되든, 프랑스식이 되든, 아니면 내각책임제가 되든 이제 '민주주의 담론'은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규칙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을 떠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자. 그렇지 않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옛날의 '강요된 질서'다.

ㅊ정치부장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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