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8월28일 독일 람슈타인에 자리잡은 미군 공군기지. 30만 명 이상의 군중이 모여 에어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날씨도 화창해 하늘 위의 곡예를 감상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이 날 에어쇼의 피날레를 맡은 것은 이탈리아 공군이었다. 열 대의 이탈리아 공군 제트기가 빨강·하양·녹색 연기 속에서 서로를 덮치고 내빼며 온갖 묘기를 뽐냈다.갑자기 지상 30m 상공에서 제트기 세 대가 충돌했다. 그것은 색다른 묘기가 아니라 사고였다. 충돌한 제트기 가운데 두 대는 인근 숲으로 떨어져 화염에 휩싸였다. 조종사는 사망했지만, 이 두 제트기는 더 이상의 인명 피해는 내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제트기는 구경하던 군중들을 덮치며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이 제트기는 공포에 질린 군중을 잔디 깎듯 밀어내며 50여 명의 사망자와 5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람슈타인 공군 기지는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항공기나 항공 기재의 성능을 뽐내는 에어쇼는 입장료가 필요 없는 공중의 볼 거리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60∼70년대에는 10월1일 국군의 날이 되면 공군이 에어쇼를 펼쳐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람슈타인 에어쇼 참사에서 보듯, 에어쇼는 더러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1973년 6월3일 파리 에어쇼 도중에 소련 투폴례프(TU)-144 초음속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발해 승무원 6명과 구경꾼 9명의 죽음을 낸 이래, 지난 30년 동안에만 적어도 열 건의 크고 작은 에어쇼 사고가 있었다. 역사상 최악의 에어쇼 참사는 2002년 7월27일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 일어났다. 이 날 에어쇼에서는 러시아제 수호이(SU)-27 전투기 한 대가 저공 비행 시험을 보이다 관중석으로 추락해 85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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