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조기 도입을 검토중인 '공개 변론재판'은 그간의 '서류재판' 관행을 어느 정도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되나 '정책법원'으로의 변신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대법원은 사회적 정책판단이 요구되는 주요 사건의 경우 변론재판을 열어 소송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닌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법정으로 초청해 의견을 청취하고 그 결과를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한총련 합법화나 호주제 폐지 등 사회적 가치판단이 필요한 사건을 대법원에서 다룰 경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공의를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소송 이해당사자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하급심 재판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으로, 대법원이 실무법원에서 정책법원으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첫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변론재판은) 수년 전부터 내부적으로 검토되어 오던 과제로 개혁작업의 일환이 아니다"고 밝혔으나 최근의 '대법관 제청파문'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파문을 통해 국민이 대법원에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했으며, 그것은 미국 연방대법원 등 외국의 최고사법기관처럼 정책적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 스스로 인정하듯 연간 2만5,000건에 달하는 대법원의 재판 부담을 고려할 때 변론재판이 얼마나 활성화할지는 회의적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한 해에 1인당 2,000건 이상의 사건을 심리하는 현 시스템 하에서 변론재판은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으며 정책 법원으로의 전환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고허가제가 조기 부활돼야 진정한 정책법원으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법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1981년 제정됐다 90년 폐지된 상고허가제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제한 규정을 둬 상고허가율을 15∼25% 수준으로 유지, 상고사건 10건 중 2건 정도만 대법원에서 다룰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상고허가제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폐지됐고, 대신 94년부터 상고제한을 다소 완화한 심리 불속행제를 운영, 상고사건 2건 중 1건 꼴로 상고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 국민의 '삼세판 법 감정', 수임건수 급락을 우려하는 변호사업계의 이해 등을 고려할 때 상고허가제의 부활은 당장 이뤄지기 어려운 형편이다. 때문에 대법원도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국민 의사와 향후 구성될 사법개혁기구에서 결정될 문제"라며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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