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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피플/ 맞춤형 전동휠체어 제작 "안양무선봉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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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피플/ 맞춤형 전동휠체어 제작 "안양무선봉사대"

입력
200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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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작아 안 맞는데…" 삼계탕집 사장 박충길(45)씨가 모터와 바퀴를 잇는 철판을 능숙하게 드릴로 뚫고 다듬기를 몇 차례.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던 둔탁한 부품들의 아귀가 척하니 맞아떨어졌다. 옆에 있던 최철수(45)씨는 복잡한 전기 회로도를 골똘히 보며 펜치로 쥔 가느다란 전깃줄을 제어판 각 부위에 끼우고 있다. "기다리는 장애우 생각하면 쉴 틈도 없어요" 하는 그의 귓등에 땀방울이 내려앉았다.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 광산빌딩 2층 20평 작업실엔 버스운전사, 식당 주인, 주부 등 직업도 제 각각인 10여명이 휴일도 아랑곳 하지않고 바퀴 나사 조이기, 용접, 모터 장착 등 전동휠체어 만들기 작업에 열중이었다. 1997년 무선통신이 좋아 헤쳐 모인 '안양무선봉사대(www.cbham.net)' 대원들이다.

무선동호회 간판만 걸기엔 없는 시간 쪼개 모인 정성이 아까워 무선으로 긴급 상황을 전파하는 동네 방범 순찰을 시작한 게 봉사대 모임의 첫 단추였다. 그러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만난 어려운 이웃과 홀로 사는 노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쌀을 제공하거나 목욕을 시켜주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자연히 모임이 커져 회원이 3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 말처럼 "사는 일에 바빠 그때그때 만난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여유를 나눠 주는 일"에 그쳤다.

그러다 불쑥 IMF 위기가 닥쳤다. 경제한파는 대원들의 생활과 삶을 바꿔놓았다. 사업이 망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대원들이 생기자 지금까지 불쌍하게 보이던 이웃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알게 됐다. "낮은 자리에 주저앉자 그제서야 장애우, 홀로 사는 노인, 부모 없는 아이들의 상처를 마음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매주 일요일 미인가 고아원을 방문하고 홀로 사는 노인 세 분을 책임지기로 한 것도 어려운 이웃과의 교류를 생활의 일부로 만들겠다는 대원들 모두의 바람 때문이었다. 매달 1만∼3만원씩 내는 회비지만 정성껏 모아 전하고 청소 빨래 목욕 소독 등 허드렛일을 도우며 땀을 나눴다.

2001년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한 장애 소녀를 만난 대원들은 또 다른 나눔을 꿈꿨다. 소녀의 다리를 만들어주겠다는 희망은 결국 매주 첫째, 셋째 일요일 맞춤형 전동휠체어 제작 봉사로 이어졌고 소녀는 제 이마로 버튼을 작동하는 멋진 다리를 선물 받았다.

대원들이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워 250만∼500만원 하는 고가 전동휠체어를 사지 못하는 전국의 장애우에게 손수 만들어 준 전동휠체어는 80여대. 현재도 6대가 대원들의 따뜻한 손길을 거쳐 장애우의 발이 되는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다양한 장애에 맞도록 편하게 만드는 것과 비용 문제. 요청이 들어오면 대원들은 꼼꼼히 대상 장애우의 장애를 파악해 스위치 위치를 바꾸고 좌석을 개조하는 등 철저하게 맞춤형으로 만든다.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반 휠체어를 사다 수동용 바퀴를 떼고 모터와 새 바퀴, 제어판, 손잡이, 보조 브레이크, 배터리 등을 장착한다. 좁은 작업실이지만 드릴팀 회로팀 용접팀 모터팀 등 공정을 나눠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였다. 그전까지 기계 한번 만져보지 못한 대원들이 거친 수작업을 척척 소화하는 것도 2년 이상 축적된 경험 때문이다.

남모르게 돕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신기술연구소 오장근 소장의 기술적 도움과 김영우 치과원장의 재정적 지원이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전국엔 이들이 만든 전동휠체어를 손꼽아 기다리는 장애인들이 많다.

서대성(40) 대장은 "지원만 되면 공정이 세분돼 비용도 80만원대로 낮추고 평일 밤 늦게라도 나와 더 많은 전동휠체어를 만들 수 있는데…" 하고 안타까워 했다.

/안양=글·사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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