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인 D사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에이즈에 감염된 혈장이 공급됐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지난달 21일. 이때 에이즈 감염자인 A(21)씨의 혈장은 이미 알부민 3,800병으로 만들어진 뒤 시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7월말께 출시 예정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통보가 1주일만 늦어졌어도 전국적인 대혼란이 빚어질 뻔 한 상황을 극적으로 모면한 셈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되짚어보면 너무나도 만연해있는 관계당국의 '안전불감증'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먼저 적십자사는 A씨의 혈액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연락을 같은 달 19일 국립보건원으로부터 받고도 이틀 후에야 D사에 이사실을 통보했다. 이에앞서 A씨의 혈액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을 확인한 때는 4개월전인 3월31일이고 에이즈 감염을 최종 확진한 시점은 두달 전인 5월 7일이다. 적어도 이 때 A씨 혈장 처리를 서둘렀다면 제조회사로 넘겨지거나 제조공정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십자사는 "음성판정 혈액에 대한 처리지침이 없어 빚어진 일"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는 안전불감증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사 제조공정을 거치면 안전하다 해도 보건당국은 '1%의 가능성과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 혈액관리에 만전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수혈을 통한 에이즈 감염사고가 잇달고 있다. 그런데도 별다른 대책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요즘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에이즈가 무서워 수혈받기가 겁난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건당국자들이 "수혈로 에이즈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본인의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묻고싶다.
정진황 사회1부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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