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골선풍(玉骨仙風)의 외모와는 달리 무예로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던 문무를 겸비한 인물'. 이의방, 정중부에 이어 고려 무신정권의 실력자로 등장하는 경대승의 캐릭터에 대한 대본의 설명이다.KBS 1TV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탤런트 박용우(32)는 제작진이 애초에 염두에 두었던 경대승의 모습 그대로다. 희고 말쑥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매는 과연 '옥골선풍의 무인'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정작 함박웃음을 지을 때면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이런 외모 때문에 데뷔 7년 째인 그는 그 동안 가벼운 배역을 주로 맡아 왔다. 영화 '쉬리'에서 '낙하산'으로 놀림 당했던 신참 정보요원, '무사'에서 잔머리 굴리기에 바쁜 말단 역관을 떠올리면 "아, 그 배우"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그런 그에게 경대승 역은 배우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찾게 해 준 기회이다. 경대승은 무신정권 실력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권력 실세들의 전횡을 보면서 무신정권에 회의와 반감을 품는 청년 장군이다. 26세에 쿠데타에 성공하지만 이의방, 정중부와는 달리 무인의 정도를 걸어가려고 애쓰다가 서른 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솔직히 사극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경대승은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영웅 막시무스(러셀 크로)를 떠올릴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흔쾌히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경대승은 무인정권에 참여했던 다른 무인들과는 달라요. 정치를 하기 위해 경쟁자를 죽인 것이 아니죠. 무인의 정도를 걸어가려고 했던 사람이어서 더욱 애착이 가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열이면 아홉은 "미스캐스팅이다", "네가 어떻게 그런 역을 하느냐"며 비웃었다. 네티즌이 일찌감치 경대승 역에 어울릴 연기자로 거론한 스타들의 명단에 그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았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MBC 탤런트 공채 24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탤런트 동기생 정준호, 이성재에 비해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편이다.
"연기자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선택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요. 처음 주위의 반응을 보고 속으로는 신이 났어요. 기대치가 낮은 만큼 제가 조금이라도 잘 하면 빛이 나겠구나 하고요. 다행히 처음 저의 캐스팅을 두고 악담을 하던 네티즌들도 많이 돌아선 것 같아요."
'무인시대'는 이의방이 죽은 후 박용우 등 젊은 출연진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해 시청률이 2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그 뒤에는 김흥기, 서인석, 이덕화, 이민우 등 쟁쟁한 사극 연기자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려는 '사극 초보' 박용우의 노력이 숨어 있다.
재기발랄한 성격이라기보다 연기에 대해 채찍질하고 자학하는 스타일이라는 그는 시청자의 관심에 들뜨기보다는 "자만하지 말고 평소의 내 페이스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초록물고기' '넘버3'에 나왔던 송강호 선배와 한석규 선배가 '쉬리'에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영화사로 쳐들어 가서 어떤 역이든 달라고 했어요. 제가 맡은 역이 보잘 것 없기는 했지만 꼭 이 분들하고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였죠."
경대승으로의 화려한 연기변신이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주는 말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