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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광기어린 役… 푹 빠졌어요"/연극 "프루프" 주연 추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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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광기어린 役… 푹 빠졌어요"/연극 "프루프" 주연 추상미

입력
200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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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클라이맥스 부분, 주인공의 연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갑자기 상대 배우가 앉아 있던 의자가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관객들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실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의도된 연출로 이해하기까지 했다.추상미가 주인공을 맡아 20일 서울 정동 제일화재 세실 극장에서 막을 올린 '프루프'의 첫날 공연에서 실제로 벌어진 해프닝이다. "맡은 배역이 자신과 다른 존재로 느껴지지 않아 무얼 새로 배울 필요도 없었다. 그냥 자신의 가슴 한 구석에서 울리는 내밀한 속삭임들을 들려주면 됐다"는 추상미의 '증언'(Proof)이 엄연한 사실임을 입증한 실제 사건이기도 했다.

97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연극계를 떠났다가 6년 만에 돌아온 그는 요즘 캐서린이란 캐릭터에 푹 빠져 있다. 캐서린은 천재 수학자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로버트를 돌봐야 하는 숙명 때문에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린 여인이다. 아버지의 재능과 광기어린 '나쁜 피'를 동시에 물려 받은 예민한 캐서린 역을 추상미는 "어떤 스타일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관객의 반응이 공연 때마다 조금씩 다르고 잘했다는 이야기도, 못했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조울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게 그의 '변명'이다.

추상미의 연기를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고(故) 추송웅의 딸인 그의 모습에 궁금증을 갖게 된다. 데뷔 순간부터 줄곧 '추송웅의 딸'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녔지만 의외로 추상미는 "아버지를 뛰어 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때로 캐서린처럼 재능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나쁜 점도 물려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할 때는 일순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보다는 내면에 많은 것이 녹아 있어서 뜨거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추송웅의 딸'로서가 아닌 '추상미 자체'로 기억되도록 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 촬영하랴, 영화 '미소' 찍으랴 정신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프루프' 출연을 감행한 데 대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기네스 펠트로가 주연을 했다는 등의 명성에 귀가 솔깃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대본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배역이라고 느꼈다"며 "그래서 두 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단 8분을 빼고 계속 연기해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기꺼이 받아 들인다"고 덧붙였다.

4회 연속 추상미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입장권은 완전히 매진된다. "지금 하고 있는 '프루프'를 몇 달 아니 몇 년이고 계속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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