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지하철에서 한 남자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언성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뒷덜미가 붉어지며 목소리가 커졌다. 그에 반비례하여 지하철의 다른 목소리들은 잦아들었다. "너, 임마, 네가 친구야? 너 거기 왜 가 있어? 내가 준댔잖아. 야, 줄 건 몇 백이지만 받을 건 몇 억이야. 그것도 못 기다려? 엉?" 쌍시옷과 '개'가 들어가는 욕설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는 쐐기를 박듯이 소리쳤다. "너 조심해, 임마!"전동차 내부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그 긴장은 곧 누그러졌다. 상대편에서 세게 나오는지 이쪽의 기세가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운전 조심하라고, 임마. 내가 언제…아니, 내가 언제 그랬냐? 운전 조심하라 그랬다니까." 상대방 쪽에서는 '너 조심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양이었다. "아니, 협박이라니. 그게 아니고, 아, 글쎄 운전 조심하라 그랬다니까. 너 왜 그래 임마. 한 번 풀리면 확 풀려. 조금만 기다려. 그래, 고맙다. 밤 늦었는데 그만 집에 들어가. 응?"
그때쯤엔 처음의 호기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서서히 주변의 눈치도 보면서 건장한 남자는 서서히 짜부라지고 있었다. 신용불량의 시대, 지하철의 풍경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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