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과 함께 성우 생활 40년이 흘렀습니다."올해로 방송 경력 40년을 맞은 성우 김종성(60·사진)씨는 라디오 드라마와 함께 성우 생활을 보냈다. 특히 그는 정치 드라마와 인연이 깊다. 1964년 TBC 성우 1기로 입사한 그는 동아방송으로 자리를 옮겨 1972년 '정계야화'로 라디오 정치드라마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도 국내 유일의 라디오 정치드라마인 MBC라디오의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MBC AM 900㎑, 표준FM 95.9㎒ 월∼금, 일 오전 11시 40분) 해설을 맡고 있다.
격동 50년은 1988년 4월1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올해로 방송 15주년을 맞아 9월부터 대우그룹 사태를 다루며 제작진이 새롭게 바뀌지만 1회 때부터 해설을 맡은 그는 계속 자리를 지킨다. "1회 때 방송을 같이 한 정수열 프로듀서, 이영신 작가 등 왕년의 제작진이 다시 모이는 셈입니다."
그는 "라디오 드라마는 성우들의 연기력이 가장 빛나는 분야여서 매력이 있다"며 "이 가운데 정치 드라마는 재미와 비판 정신이 어우러져 오락과 교양기능을 함께 갖춘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격동 50년'의 경우 실존 인물이 연관된 현대사를 다루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관련 인물들의 협박전화는 수도 없이 받았고 소송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2001년 문민정부 초기의 슬롯머신 사건을 다룬 '문민 정부의 허와 실' 편에서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이 1993년 슬롯머신 업자 정덕진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방송했다가 이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93년에는 주미 특파원으로 근무 중 김대중 납치 사건 보도와 관련해 미국으로 망명한 문명자씨가 자신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친했던 반한 활동가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수십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외압으로 방송이 중단된 경우도 있다. "1991년 9월 유신정권의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뤘다가 유신시대 정치인들의 반발과 압력으로 6개월 동안 방송이 중단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드라마의 생명은 비판 정신인 만큼 해설에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절대 빠뜨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 정신이 없었다면 청취자들이 외면해 15년 동안 방송을 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랜 방송 생활 덕분에 특별히 그를 아낀 고정 팬도 많다.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각별한 팬이셨습니다." 정회장은 그룹 홍보 비디오 해설을 그에게 맡길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당시 그의 목소리가 실린 비디오는 정회장 방북 때 북한에도 전달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보고 "정감있는 우리 민중의 목소리"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편안하면서도 듣는 이를 선동하는 힘이 살아 있다. 격동 50년 연출을 맡았던 김승월 프로듀서는 그를 가리켜 "운율을 잘 살려 우리 말을 가장 아름답게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성우에게는 목소리 관리가 생명. 그는 술, 담배는 전혀 안하며 1주일 방송 분을 한꺼번에 녹음하는 녹음 전날에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또 형제 방송인으로도 유명하다. 방송인으로 25년 동안 DJ를 맡아온 김기덕(55)씨가 그의 친동생이다. "초창기 방송일은 힘들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피는 어쩔 수 없나 봐요."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바른 우리말 살리기이다. "최근 은어와 비속어가 남발되고, 인터넷 채팅문화의 영향으로 우리말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며 "언어가 곧 인격이라는 생각을 갖고 바른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소설을 음성으로 들려주는 오디오북 제작이다. "기회가 된다면 황석영씨의 삼국지를 오디오북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 또한 바른 우리 말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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