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美人計)의 역사는 오래됐다. 중국 주(周)나라 문왕은 주왕에게 천하절색 달기를, 월(越)나라 왕 구천은 오(吳)나라 왕 부차에게 서시를 보내는 미인계를 썼다. 진(秦)나라 목공은 이민족 융(戎) 왕에게 무희 16명을 보내 주색의 덫에 빠뜨렸고,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는 왕윤이 보낸 초선의 이간질에 휘말려 동탁을 죽였다.현대에도 미인계는 계속된다. 독일 여간첩 마타하리, 2차 대전 종전 직후 맥아더 사령부 장성에게 접근했던 일본 영화배우 하라 세스코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자국 공관에 피신해 커피 맛을 들인 고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미모의 독일여인 손탁을 시켜 커피 시중과 수발을 들게 한 일도 있다.
우리나라도 남북한의 외교전이 치열했던 1960∼70년대, 국제사회에서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국가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 국가원수를 국빈으로 초청, 지나친 환대는 물론 유명 연예인이 잠자리까지 시중들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도 남겼다. 물론 같은 시기 북한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지난해 부산 아시안 게임 북한의 '미녀 응원단' 293명은 아직까지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다. "역시 남남북녀"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요즘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리고 있는 대구에서도 연일 북한 응원단이 화제다. 인터넷은 물론 일부 언론에서조차 해묵은 미인계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연산 미소' '그녀들은 예뻤다'라는 등의 제목을 달아 온통 찬사 일색이다.
만약 북한 응원단을 미인계라 부르는 것이 듣기 거북하다면 왜 응원단을 남자 없이 모두 여성들로만 구성했는지, 그것도 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자랑하면서 미모의 젊은 여성들만 골라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궁색한 해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북한 응원단과 북한 정권을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 '인식의 오류'다. 북한 응원단의 해맑은 미소 뒤에는 굶주림과 인권 탄압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 북한 정권의 권력세습, 대량살상무기(WMD), 마약 밀거래와 달러위조 등 북한의 현실과 어두운 이미지도 분명 존재한다.
'미녀 응원단'의 잘 훈련된 미소 뒤에 북한 주민들의 고통도 함께 읽는 지혜, 이것이 분단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의 진정한 책임이 아닐까.
/장영순·충남 논산시 두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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