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설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고종석(44)씨에게 남다른 물음일 수 있다. 그는 매우 산뜻한 에세이와 칼럼으로 글쓰기의 욕망을 실현하고 성취를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그가 두 번째 소설집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1993년 장편 '기자들'로 이름 앞에 소설가라는 직분을 놓고, 97년 첫 창작집을 낸 지 6년 만이다.
평론가 김병익씨는 "같은 글쓰기라도 사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요구하는 저널리스트나 에세이스트와 현실 너머의 세계를 향한 자유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작가는 서로 근본적 체질이 달라서 사유와 문체의 결을 따로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고씨는 이 '체질 달리하기'를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했다. "역사는 있었던 것을 기술하며 시(詩)는 있을 수 있는 것을 기술한다." 시가 문학 전체를 가리킨다면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그는 사실에 대해 발언하는 칼럼니스트이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가다. '왜 소설을 쓰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는 "그 글쓰기가 사람살이의 사소한 부분에서 붙잡히는 생의 진실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사로는 기자가 본 것을 다 쓰지 못한다. 분량도 제한돼 있다. 기사로 기록되는 역사는 그물코가 크다. 나는 그 그물코에 걸리지 않는 자그마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소설집에 묶인 중단편 6편은 그 작은 이야기들이다.
표제작 '엘리아의 제야'에서 화자는 시인이다. 그는 세밑에 치과의사, 대학교수, 화가, 영화감독, 신문기자 등 또래 친구 7명과 만났다. 술에 취해 귀가한 다음날 비어 있는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이 사회의 '주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화자의 감정이 비집고 나온다. "누군가의 가랑이 밑을 지나지 않았다는 건 내 자부심이다. 기품 있게 살자." 다른 작품 '파두'나 '누이생각'에서도 화자는 비슷하게 지식인이되,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사람이다.
아웃사이더로 갖는 감정은 작품 곳곳에서 매우 솔직하게 드러난다. 어느 쪽에도 속하기 싫어하고 또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작가처럼, 그가 쓰는 소설 속 화자도 경계에 서서 망설이고 머뭇거린다. 김병익씨가 '에세이소설'이라고 이름 붙였듯 고씨의 작품은 '소설'과 '소설 아닌 것'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서성거림은 고씨 소설을 다른 작가와 가르는 특성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에서 아웃사이더 지식인 외에도 장애인('엘리아의 제야'), 고아('파두') 등 소외된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결코 경제적 의미에서는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소수다. 그들은 계급 사다리 아래 놓여 있다." 작가는 그들이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를 내도록 한다. 그것은 작가가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참여하는 한 방식이다. 어떤 목소리는 문학적으로 걸러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예민하게 읽혀지는 발언이 우리 시대의 뜨거운 담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도드라진 자리를 갖는다.
글쓰기의 영역을 넓힌 데 대해 그는 "비루한 탐욕"이라고 낮춰 말하며 웃었다. 칼럼의 유통기한이 숨차도록 짧다는 것, 소설은 그보다 긴 시간을 견뎌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내 삶의 세세한 것을, 더 잘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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