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판교신도시의 주택공급량을 이미 계획된 목표보다 1만 가구 늘려 도합 3만 가구로 하며, 인구도 3만 명 늘린 9만 명을 수용하겠다는 변경안을 발표하였다. 2년 이상 정치권과 정부가 줄다리기를 하던 끝에 결국 개발밀도를 높이려는 정부가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강남 아파트가격의 게릴라성 상승과 어수선한 정치권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개발규모의 변경과 더불어 개발목표도 수정되었다. 수도권 성장억제를 위해 인구수용을 최소화하고, 벤처단지 개발을 통해 수도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던 목표가 강남의 아파트 수요를 흡수하여 가격상승을 막겠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러나 한 대상지를 두고 개발이 임박한 시점에 이렇듯 목표 전환을 해도 되는지, 또 수정된 개발목표의 성취가 가능한지 의문이 남는다.
사실 당초의 개발목표는 현실성이 없는, 지극히 이상적인 것이었다. 280만평도 넘는 금싸라기 땅에 인구를 고작 6만 명 수용하겠다는 당정협의의 결정은 처음부터 상식을 넘어선 일이었다. 이는 바로 인접한 분당 인구밀도의 3분의 1도 채 안된다. 물론 판교를 아주 쾌적한 모범도시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가능도 하겠으나, 비현실적 저밀도 개발은 결국 입주자에게 비싼 분양가를 부담시키며, 아파트 가격상승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개발목표가 비현실적으로 설정됐던 까닭은 전문가들에 의한 도시계획적 판단보다는 정치가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적 측면에서는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개발을 해야 하겠고, 정치적으로는 수도권집중억제라는 명분을 저버릴 수 없어 절충한 것이 저밀도 개발이다.
그러나 수도권집중억제와 지역균형개발이라는 슬로건은 정치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실천적이지는 못하다. 현실에서는 인구가 늘어나면 주택부족이 심화되고, 가격이 상승되어, 주택을 더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반면 주택을 많이 지으면, 집 값이 떨어지고, 더 많은 인구가 몰려들 수 있다. 그래서 수도권 주택건설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주택건설이 인구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주택이 남아돌아 가는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만 봐도 그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개발목표, 즉 판교개발로 강남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희망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당초 개발목표가 정치권의 정치적 판단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면, 변경안은 정부의 경제적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강남은 아파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식층과 부유층이 밀집되어있고, 좋은 교육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판교가 제2의 강남이 되기 위해서는 강남보다 더 나은 교육·생활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며,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희망은 그야말로 희망으로 끝나기 쉽다. 설혹 더 나은 환경을 만든다고 해도 과연 강남의 아파트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도 미지수다. 비록 평균 주택규모가 여타 신도시들 보다 크다고는 하나, 중소규모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걸린다. 중산층 이상을 위해 주택 1만 가구를 짓고, 여기에 4조∼5조원이 더 투자된다고 해서, 강남에 떠도는 부동자금의 몇 %를 여기에 흡수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판교신도시 개발목표는 판교라고 하는 입지와 규모가 갖고 있는 개발잠재력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또한 실천 가능성이 정치경제적 판단에 앞서 고려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무엇보다 전문가적 판단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거나, 임기응변적으로 변경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모든 것을 성취하겠다는 과욕을 버리고 현실성 있는 목표 아래 지체없이 개발하는 것만이 실기하지 않고 목표의 일부라도 달성할 수 있는 길이다.
안 건 혁 서울대 교수·도시설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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