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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美몬태나 주립대 교수 건축가 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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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美몬태나 주립대 교수 건축가 조병수

입력
200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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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병수(46)씨는 미국 몬태나 주립대 교수이다. 서울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30대 중반에 뒤늦게 유학간 모교이다. 1999년 객원교수로 그를 초청했던 대학은 2001년에는 아예 부교수 자리를 맡겼다. 물론 서울에 건축사무소가 있어서 방학이면 귀국해 한국에서도 건축설계를 꾸준히 하고 있다. 가끔은 몬태나 대학 건축과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시골을 훑는다.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을 살리는 도심재개발운동을 제안하고 그를 위해 도심형 서민주택을 설계해서 상도 받았던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나라 산천이 왜 그렇게 빠른 시간에 아파트와 빌딩군으로 뒤덮여버리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독일에서도 1년간 가르쳤던 경험이 있는 그에게 한국은 어떻게 도시를 개발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미국과 한국에서 건축작업을 해보니 많은 것이 다른가.

"미국은 아무래도 설계비나 공사비를 한국보다 많이 주니까 건축의 질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학교 건축이 싸게 빨리 짓는 것으로 유명한데 미국은 평균 주택 공사비의 3∼5배를 더 쳐주니까 시설이 견고하고 훨씬 오래 간다. 대신 미국인들은 보수적이라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한국은 새로운 건축양식을 잘 받아들인다."

―한국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가.

"청계천 고가를 허물어서 놀랐다. 전에는 이런 계획을 세우면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닥치고 그러면 실행에 옮기지 않았는데 이제는 환경을 위해 불편을 받아들일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니 반갑다. 그러면서 동시에 망가뜨리는 작업이 계속되니 이해하기 힘들다. 새만금도 그렇고 아파트 중심으로 개발되는 도시계획도 그렇다. 아파트촌이 생기면 당장 들어가 사는 사람들, 그 지역을 개발한 개발업자들, 공사를 한 건설업체, 허가에 관여한 정치인들은 이득을 챙겼겠지만 이웃과 동네사람들, 옆집, 골목길, 하늘, 흙냄새 같은 것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손실이다. 이걸 온 국민이 손해봐야 하는데 일부를 위해서 이런 정책이 계속되고 있으니 답답하다."

―아파트가 그렇게 나쁜가.

"아파트는 집단이기주의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사회적 현상이 드러난 사례이다. 원래 살아가던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을 과격하게 잘라버리고 아파트 주민들만을 위한 배타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지는데다 시각적으로도 주변과 차단이 된다. 강북이 다 망가져도 다행히 산세가 좋아서 보완이 됐는데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병풍처럼 산을 막아서고 있다. 그런데도 정책적으로 아파트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단독주택은 3층 이상을 못 짓는 지역에서 아파트만은 고도제한 없이 고층으로 들어설 수 있고 단독주택은 발코니를 막으면 불법인데 아파트는 된다. 아파트에 주는 혜택과 권한을 단독주택에 조금만 주어도 저층, 고밀도로 산세와 마을의 기본정서를 망가뜨리지 않고 재개발할 수 있을텐데."

―대안이 있나.

"우선 지방도시에는 아파트를 절대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충무처럼 아름다운 도시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권위있는 심의위원회가 지역마다 있어서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단호하게 지켜야 한다. 그에 앞서 도시마다 마을마다 100년 계획이 있어야 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지역마다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있다. 몇 미터마다 공원을 세우고 도로는 어떤 곳으로 내야 한다는 방향을 잡아놓고 있다. 사유재산은 지켜줘야 하니까 공원과 도로예정지역에 있는 주택이 신축을 하려고 하면 이때 마스터플랜에 따라 길이나 공원 대지를 내놓게 하는 대신 건폐율이나 용적율, 혹은 주차공간에서 혜택을 줌으로써 전체 마을의 모습을 아름답게 지켜간다. 유럽의 도시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을의 전통이 우리에겐 있다. 들머리에는 장승이 있고 정자가 나오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자연친화적으로 마을이 들어서 있다. 서울은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지만 지방은 서울이 실패한 개발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일산만 해도 구릉과 개울, 논밭이 아름답고 초가집 기와집 고택이 많이 남아있던 곳인데 신도시 개발을 서둘면서 샛길과 샛강 연목과 늪지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신도시 계획은 모든 땅을 너무 평지화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중국 신도시 개발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아는데.

"몬태나대 스승(크리스 버금)이 미 캘리포니아에서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중인데 이 크리스버금설계사무소에서 중국 텐진의 신도시 개발을 맡아 이 작업에 동참한다. 나는 우선적으로 그곳에 들어설 몬테소리학교 설계를 맡았다. 중국 관계자들이 23일 한국에 와서 신도시들을 보고 갔다. 중국인들에게도 말한다. 우리가 실패한 개발논리를 답습하지 말고 전통과 자연을 살리는 신도시를 만들라고."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조교수의 세 가지 제안

인천국제공항 주변을 덜 개발하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활동하다보니 어느덧 가장 친근해진 공간이 인천공항에서 서울에 이르는 길. 그도 인천공항을 드나들면서 알게 됐다지만 넓게 펼쳐진 개펄과 염전지, 그리고 그 위로 빨갛게 깔리는 풀들이 다른 어느 나라 국제공항 주변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 때마다 그 길에 건축물이 늘어나더군요. 물론 공항을 만드느라 돈이 많이 들었을 테니 그걸 채우려면 주변 대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하지만 개발은 최소한으로 줄였으면 합니다."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중단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는 반면 인천 공항 주변은 간척지로 개발되는데 아무런 반대 소리도 듣지 못했다. 전국적 땅 크기로 보면 이 정도 간척지를 개발해서 만들어지는 땅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자연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한다"며 "청계고가는 잘못됐다고 없애면서 뭐하러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느냐"고 반문했다.

절의 사유재산 행사를 제한하자

건축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도 한국에서 사찰과 전통건축을 보길 즐겨한다. 그래서 그가 꼽은 한국건축의 백미 중의 하나가 통도사 들어가는 길.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는 통도사엘 가지 못한다. 통도사가 길고 구불구불하던 진입로를 크고 넓은 직선도로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어떻게 그렇게 흉물스럽게 바꾸었는지 마음이 아파서 차마 볼 수가 없더라"는 그는 절은, 특히 오래된 고찰은 종교집단의 사유재산이기 전에 한 나라의 문화유산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주변 경관을 바꿀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절에 이르는 고아한 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절 내부에서는 크고 화려한 법당이 지어지면서 아담한 숲이 사라지고 고졸한 법당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는 "오래된 절의 건축행위는 엄격하게 제한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기곶, 있는 모습대로 개발하고 싶다

그가 지난해 여름 몬태나대 건축학과 제자들과 함께 찾은 곳은 경북 포항 장기곶의 작은 어촌마을.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자그마한 집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어서있는 모습은 유럽의 유명하다는 해안도시의 아름다움은 저리가라였다. "제자들도 동네에 완전히 빠져서 새벽 세, 네시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토론을 계속했다"며 전통 가옥을 그 모습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을 하면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자연경관을 무시하고 삐죽 솟아오르는 아파트. 산세가 아담한 시골에도 어김없이 아파트 한 두 동이 서 있다. 그는 "아마도 장기곶을 휴양도시로 개발하자고 하면 있던 집들은 싹 허물고 새 건물을 높이 올릴 생각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아름다움도 사라진다. 마을을 그대로 살리면서 어촌가옥을 건축가들이 살짝만 손보면 어민들은 어민들대로 집을 잃지 않고 관광객을 위한 숙소도 덤으로 얻는, 기가 막힌 관광촌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가구마다 3,000만∼4,000만원이면 될 일이니 적게는 몇 억, 크게는 몇 십억이면 한 마을을 살릴 수 있다고. 그는 장기곶 뿐 아니라 다른 시골 마을도 마찬가지라면서 "(돈이 많은) 대기업이 투자 차원에서라도 지방과 지방민을 살리는 이런 일에 나설법한데"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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