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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89>讀史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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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89>讀史新論

입력
200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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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8월27일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이라는 제목의 사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해 9월15일까지 1차분이 연재되고 다시 10월29일부터 12월13일까지 2차분이 연재돼 50회까지 나아간 이 미완의 사론은 우리 역사에서 근대적 민족주의 사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독사신론'은 그 즈음 일본 학계의 영향 아래 조선 사학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단군부정론(檀君否定論) 등에 대한 대타(對他)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실제로 김택영(金澤榮)의 '동사집략(東史輯略·1902)'과 그 증보판인 '역사집략(歷史輯略·1905)'은 그 때까지 전승되던 단군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있었고, 현채(玄采)의 '동국사략(東國史略·1906)'은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미마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채호는 이런 역사 인식들을 일본 제국주의의 그림자로 파악하고 '독사신론'을 통해 민족을 주체로 삼는 역사 기술을 시도했다.

신채호에 따르면 동국(東國) 즉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민족은 선비족·부여족·지나족·말갈족·여진족·토족(土族)의 여섯인데, 이 가운데 단군 자손인 부여족이 다른 5족을 정복하고 흡수해서 동국 역사의 주류가 되었다. 동국 역사를 일본 민족과는 무관한 부여족의 역사로 파악함으로써, 그는 일선동조론과 단군부정론을 동시에 돌파하고자 했다. 신채호는 특히 신라가 이족(異族)인 당(唐)을 끌어들여 '동족(同族)'인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을 민족적 시각에서 단죄했다.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로 파악하는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충분한 실증에 밑받침되지 않은 '독사신론'은 낡은 사관의 창고라고 할 만하지만, 그 때까지의 왕조 중심 역사 서술을 민족 중심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일정한 진보성을 띠고 있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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