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언론 접촉은 술 사고 밥 사기'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고 아주 난감했다. 대통령이 장·차관들과의 워크숍에서 정색하고 언론을 비판한 만큼 내용을 기사화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내 일이다. 그러나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다른 데스크에게 미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한 사람의 차장은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 곧바로 반문해왔다. 결국 1개의 상자 기사에 담기는 했지만, 모두 그 기사를 들여다보기도 싫은 듯했다.과거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어떤 논란을 놓고 정치부 기자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 취임 후에는 이처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일이 잦아졌다. 노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한 움큼씩 비판을 쏟아 놓는 일이 하도 자주 있기 때문인 것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그런 기사를 다루기가 싫은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온통 온갖 갈등으로 채워진 신문에, '대통령과 언론의 갈등'이라는 뉴스가치도 없는 기사를 밀어 넣기가 주저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을 맞은 요즘 신문의 1면부터 사회면까지 대부분의 지면이 사회 곳곳의 갈등과 관련된 기사로 가득 차 있다. 노 대통령은 많은 지면을 채우기 어려워 언론이 그릇된 의제설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집단과 집단, 또는 집단 내부의 이편 저편으로 갈라진 갈등으로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언제나 같은 편 같았던 청와대와 검찰이 갈등을 빚더니 이제는 청주에서 검사와 검사가 갈등하고 있다. 국책사업 때문에 도지사가 삭발하며 싸웠고, 학교에선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반목했다.
한 가지가 잠잠해지면 곧바로 다른 갈등이 분출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 세대, 보혁 등 과거의 인구통계학적 잣대로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갈등이 점점 국지화하면서 사회의 저마다 다른 단위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갈등의 시대가 온 듯한 느낌이다.
전환기의 진통이라고 하기엔 그 양상이 너무 비합리적이다. 서로 이익이 충돌하기 보다 적개심과 증오가 갈등의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싸움이기에 상대보다는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에 열중하는 이상한 현상이 빈발한다. 국정홍보처 차장이 외국 신문에 창피한 수준의 기고를 한 뒤, 그 보다 더 수준이 낮은 해명으로 정부에 타격을 입힌 일이 그래서 일어난다.
특히 갈등의 최후 조정역을 맡아야 할 대통령이 크고 작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뒤섞여 쉴새 없이 자기의 적의와 미움을 표출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잘못이다. 일부 언론의 적개심이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대통령이 거의 같은 방식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를 암담하게 한다.
'검사와의 대화'를 마친 뒤 검찰을 포용하기 보다 "꽉 잡았다"고 말하는 등의 일들이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인공기 소각사건에서 보듯, 대통령이 어느 한쪽의 편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들이 갈등을 더 부추기기도 한다.
노 대통령보다 훨씬 극심한 고초를 겪은 대통령들도 취임 후 기조는 화해와 포용으로 잡았다. 그것은 40% 안팎의 득표율로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는 있어도 그 지지율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극적으로 대권을 잡은 노 대통령이 누구를 그토록 미워할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유 승 우 정치부 차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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