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부터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시작되는 1차 6자 회담은 북한 핵 문제의 전환점이다. 4월 베이징 북미중 3자 회담 때와 달리 미국이 대북 제안을 마련해 협상테이블에 앉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미국 등의 압박에 따른 고립이 한계점에 이른 상황이다. 물론 대화 재개가 바로 핵 문제 해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회담 이전보다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이 핵 문제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무엇보다 회담의 쟁점이 북 핵 폐기와 대북 체제보장 방안으로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압축됐다. 한미일 3국은 14일 워싱턴 협의에서 마련한 공동 대응방안을 가지고 회담에 나선다.
이번 회담에서는 첫 단계에 해당하는 북한의 '추가 상황 악화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듯하다. 대신 미국의 대북 불가침 및 정권 교체 불원 의사 표명과 다른 참가국들의 보증을 제안할 전망이다.
북한은 1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밝혔듯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 확인 후에야 핵 사찰 등 핵 폐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 북미 외교관계 정상화, 북한과 다른 나라 간 경제 협력에 대한 미국의 용인 등 요구사항의 리스트를 열거할 전망이다.
북한은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이 내비친 '미 행정부 서면 약속 → 미 의회 결의' 방안이나 러시아의 다자 안전보장 제안에 대해 미리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미간 대립으로 회담이 파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회담 기간 중 남북 접촉을 갖고 중재에 나선다는 복안이지만 북한이 이에 응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해 관계가 조금씩 다른 당사국이 모두 포함된 회담인 만큼 회담이 복잡한 양상으로 흐를 수도 있다. 윤영관 장관도 "한미일이 큰 틀에서의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했지만 구체적 강조점이나 뉘앙스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은 북한이 의제화를 거부하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공식 언급한다는 입장이어서 북한에게 전략적인 일시 회담 거부 등 빌미를 줄 여지가 있다.
때문에 이번 회담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나 비관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극적인 돌파구나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긴 여정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 "다자속 양자" 동상이몽
이번 회담은 '다자 속 양자대화'라는 모호한 틀에 북미가 의견을 접근시킴에 따라 성사됐다. 북미간 직접 대화를 고집해온 북한과 다자대화를 주장해온 미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지속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해 10월17일 북핵 문제가 재차 불거진 뒤 한반도에는 전례없는 위기 국면이 지속됐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재처리 완료 공식화 등 '벼랑끝 전술'을 이어갔고 미국 역시 대북 중유공급 중단과 제한적 북폭설 등을 흘리며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나 북미 양측은 1994년 제네바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틀이 필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 했다. 물론 북한은 북미간 직접대화를 통해 이전보다 구속력을 가진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고, 미국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경제적 부담의 분산을 필요로 했다.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가졌던 4월 베이징 3자회담도 북한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양자대화였다.
주변국이 모두 참가하게 된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은 '다자 속 양자대화'에 주력할 것이고, 미국은 그 가능성을 흘리며 다자의 틀로 북한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돌발변수만 없다면 형식상으로는 차선책이 마련된 만큼 북미 양국은 나름의 계산에 따라 6자 틀을 당분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6개국 입장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북핵 위협의 인식 정도, 북한 체제 안전보장의 필요성 공감 여부 등에 따라 6자회담의 전략을 달리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 저지를 세계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미국은 북핵을 '급박하고 위험한 위기'로 규정하고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핵 관련 상황 악화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다짐을 받고, 차기 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 개발 정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미·일의 목표와 다소 배치된다. 정부가 이 같은 태도를 취한 것은 북미간 완충 역할을 하겠다는 게 복안이기 때문이다. '현상동결→원상회복→포괄해결'이라는 3단계 해법은 이미 한미일 공동 대응 방안에 상당히 반영돼 있다. 그러나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는 데다 북미가 서로 중국 끌어들이기에 나서고 있어 우리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접촉에 비중을 두고, 4월 베이징 회담에서 내놓은 '대범한 방도'에 대한 미국의 대답, 즉 대북 적대시 정책의 전환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북미불가침조약 체결, 북미 외교 정상화 등을 강조하면서 초기부터 특유의 벼랑 끝 전술로 나설 전망이다. 이를 위해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는 중러 간은 물론 한미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 외교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판 자체를 깨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데다 중러까지 등을 돌리면 외교적 고립까지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폐기에 관한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당근'을 제공할 수 없다는, '선(先) 핵폐기 의사 표명, 후(後) 체제보장 논의 가능'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또 체제보장과 관련해 핵폐기가 선행되지 않는 한 섣불리 대안을 내놓지 않을 것 같다. 특히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확언하는데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밝힌 의회 결의안을 통한 체제 안전보장 수준 이상의 제안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측통들은 미국이 이번에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적 방안(로드맵)을 제시할 가능성은 적지만 단계적 해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제시해온 단계적 해법에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줄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단계적 해법에 공감하면서도 미국의 북한 체제보장 방안에는 신중한 자세다. 미국이 불가침을 포함해 북한 체제안전을 포괄적으로 보장할 경우 자칫 자신의 안보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기회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하고, 북일 수교회담 재개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6자회담 또는 회담 도중 진행될 북일 양자접촉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북측에 제시할 것 같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의 완고한 주장을 누그러뜨려 충돌을 최소화하고 협상이 진전되도록 거중조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체제안전 보장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이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은 북핵 문제가 동북아 정세의 긴장을 조성, 중국 경제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핵폐기의 당위성을 강조한 뒤 한국의 단계적 구상이 현실적이라는 점을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대체로 중국과 대동소이한 입장이지만 북한의 체제안전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주변국이 북한 체제보장을 연대해 확인해주자는 제안을 이미 밝힌 바 있는 러시아로서는 우선 러시아의 6자회담 참여를 가능케 한 북한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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