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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시선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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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시선의 감옥

입력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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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하철의 성 추행이 문제가 되자 철도 당국에서 내놓은 대책이 희한했다. 여성전용칸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여성전용칸은 전동차의 맨 앞과 뒤에 붙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하루는 수원역에서 바로 그 문제의 여성전용칸에 올라타게 되었다. 성 추행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고 뒤늦게 허겁지겁 뛰어오다 보니 여성전용칸인지 남성전용칸인지 알 도리가 없어서였다. 시행 초기여서 그랬는지 여성들로 가득했다. 제도 도입을 반기는 듯한 여성, 별 관심 없어 뵈는 여성, 어쨌거나 남자를 증오하는 여성, 치한이 오거나 말거나 그저 피곤하여 주무시는 여성으로 전용칸은 만원이었다. 그것은 시선의 감옥이었다. 거기 수감되어 본 사람은 안다. 출구가 없다. 옆 칸으로 옮기려고 해도 머쓱하다. 마치 성 추행에 실패하여 슬금슬금 쫓겨가는 느낌이다. 안 옮기고 버티자니 이런 시선이 꽂힌다. "아직도 포기를 못하는군. 더러운 치한 같으니라구." 묵묵히 책을 읽고 있으면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흥, 책 읽는 척해도 난 다 알아."

나 말고도 남성 동지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문제는 나도 그들을 치한으로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명이 무슨 이유에선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 웃음의 정체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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