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10년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글쓰기 교육이 "허깨비한테 끌려다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글은 일본말, 중국말, 서양말 투성이었다. 우리 말은 비뚤어지고, 줄어들고, 본래 모습마저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병들어 온전치 못한 말 쓰임새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이오덕씨의 글쓰기 교육은 이렇게 시작됐다. 25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생활에서 우러난 글이 가장 참되고 값진 글"이라는 믿음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고인의 믿음은 그의 삶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19세에 교편을 잡았고 40여 년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제5공화국 말기, 아이들 편에서 교육 행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시달림을 당했다. 평생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리라던 교직생활을 스스로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천직'은 중단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나오니 사회가 커다란 교실이었다. 그는 제 말글을 제대로 살려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치는 '사회의 교사'로 나섰다.
그가 보기에 어느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지식인들의 유식병이었다. '…했었었다'라는 식의 말은 영어에나 있는 과거완료 시제로 지식인들이 쓰던 번역투 문장이다. 이 말투가 민중들의 말버릇에까지 이어져 이제는 버젓이 입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피동태를 거의 쓰지 않는 것이 우리말의 특성이지만 이제는 반드시 능동형을 써야 하는 경우에까지 피동형을 쓰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몫'이 '지분'과, '처지'가 '입장'과 섞이는 것도 외국어의 영향이다. 고인은 이렇듯 외국어의 밀물로 우리말이 퇴화하는 것을 두고 "민중들이 다 쉽게 알아듣는 말을 써서는 지식인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귄위주의' 때문"이라며 비판했다.
아이들은 그래서 희망이었다.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기 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멋부리지 않고 솔직하게 쓰는 데서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는 시작된다. "아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면 이리저리 뒹굴면서 참되고 바른 글을 끝없이 쏟아낸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직하게, 오로지 정직하게만 쓰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의 작품을 묶어 책을 냈다. '일하는 아이들'과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는 이렇게 나온 작품집이다.
'우리는 촌에서 마로 사노?/ 도시에 가서 살지/ 라디오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참 슬프다./ 그런 사람들은 도시에 가서/ 돈도 많이 벌일게다/ 우리는 이런데 마로 사노?' 1969년 경북 안동 대곡분교 2학년 학생이었던 김종철의 시 '촌(村)'이다. '일하는 아이들'에 실린 이 시에 사람들은 놀랐다. 어린이가 쓴 것이 아닐 거라고 쑥덕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정직하게 쓰기'의 힘은 그만큼 컸다.
고인은 동시를 쓰고 동화를 짓는 작가로 문단에 나왔지만, "아동문학에서 제대로 해놓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예쁘고 고운 것만 바라보도록 하지 않고, '진짜 삶'을 말하도록 했다는 데서 아동문학가로서의 그의 업적은 빛난다. 그 진짜 삶을 말하기 위해선, "아이들에게 생활을 주어야 한다"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책 읽어라, 무엇해라 강요하는 것은 아이들에게서 생활을 빼앗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인은 "글쓰기 교육은 참된 사람을 기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나는 이 일에서 다른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평생의 '운동'에 자부심을 가졌다. 1965년 '글쓰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낸 이래 펴낸 53권의 저서 중 많은 것이 우리말을 바로 쓰도록 이끄는 책이었다. "하던 일이 자꾸 벽에 부닥칠 때는 그만 다 집어치우고 어디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내가 살아온 이야기라도 남기고 시라도 몇 편 쓰다가 죽고 싶지만, 나는 아무래도 편안하게 살아갈 팔자로 태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그는 10여 년 간 앓은 지병으로 몸이 쇠약해졌음에도 집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교육 수상록, 아동문학 비평 등 출판되지 않은 원고가 책 서너 권 분량이 된다. 모두 그가 걸어온 '천직'의 길에 놓인 것이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이오덕 어록
"동시라면 그저 꽃밭이요 나비요 봄바람이요, 옹달샘과 달밤과 군밤에 할머니 옛 얘기가 아니면 기껏해야 골동품 항아리나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시가 나오겠는가? 현실을 걱정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그와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의 꿈 속에서 즐거워질 수도 없는 것이고, 설령 그런 꿈 속에서 사는 아이가 있다면 그 마음이 병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아이들에게 그런 현실도피의 마음을 길러준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창조하는 게 아니라 우리말로써 창조하고 살아가는 것이다."('우리말 바로쓰기' 에서)
● 연보
1925년 경북 청송 출생 43년 영덕농업학교 졸업 44년 경북 청송군 부동국교 교사 부임 55년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 발표 등단 71년 한국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83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창설 88년 제3회 단재상 수상 2002년 은관문화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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