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의 잇따른 파업사태에 이은 대우자동차의 파업 결의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일대 회오리에 휘말려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생존경쟁이 어느 업종보다 치열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 최고의 기업 도요타자동차의 현지 취재를 통해 기로에 놓인 한국 자동차 산업의 돌파구를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나고야(名古屋)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Welcome to Toyotacity'라는 인사말이 붙은 톨게이트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도요타 자동차 본사와 일본 내 공장 15곳 가운데 12곳이 모여있어 '도요타 왕국'의 본거지로 불리는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다.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도요타 마크를 달고 있다. 오죽했으면 도요타 덕분에 도시가 번성하자 1959년 아예 지명을 바꿨을까.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002년 영업이익 1조엔(10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올해는 매출 15조5,015억엔에 영업이익 1조2,716억엔을 기록한 기업. 렉서스 브랜드로 BMW, 벤츠 등 세계의 명차와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글로벌 기업이면서도 일본 특유의 종신고용제를 고집스럽게 지켜가는 기업. 50년 넘는 무분규 전통을 이어오며 노조가 스스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기업.
도요타회관에서 만난 도요타 임원들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무분규 전통을 이어온 비결에 대해 홍보부 마츠모토 신야(宋本愼也) 과장은 "요즘 똑같은 질문을 한국 기자들로부터 무려 20차례 넘게 받았다"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운을 뗀 뒤 "도요타의 경영 철학인 '고객 제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사 모두가 노력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도 2차대전 패전 직후인 1950년 자금부족으로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파업 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도산 위기로 몰렸던 경험이 있다. 마츠모토 과장은 "단 한 차례의 파업 경험이었지만, 파업을 하면 결국 고객이 피해를 입게 되고, 고객의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노사 모두가 깨닫게 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는 법. 차량기술본부 우치야마다 다케시(內山田 竹志) 전무는 "눈 앞의 이익을 위해 해고를 단행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면서 "장기 고용으로 숙련된 도요타의 노동자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경제법칙을 잇따라 도입하고 있지만, 도요타 경영진은 종신고용제를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고 있다.
마케팅 본부 아시아부 직원 이치카와 나오카(市川直子)씨는 "10년, 20년 후의 모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 곧 나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사가 자동차 바퀴처럼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도요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지난해 1조4,000억엔 가까운 경상이익을 내고도 노조가 경쟁 업체의 상황과 자동차 시장의 전망 등을 고려해 스스로 임금을 동결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치야마다 전무는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통해 노사가 이익을 함께 나누는 공존과 협력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도요타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것"이라고 단언했다.
도요타 한 관계자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무서운 경쟁자로 떠올랐지만, 앞으로 노사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며 "한국 자동차 회사 노조들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노사가 서로 양보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시=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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