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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속 죽음" 진실 밝힌다/검시서 DNA검사까지 법의학 눈부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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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속 죽음" 진실 밝힌다/검시서 DNA검사까지 법의학 눈부신 발전

입력
200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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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선의 검시 교과서라 할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이 번역 출간됐다. 호된 문초가 수사의 전부라고 여기던 당시에도 나름대로 사인을 밝히려는 철저한 검시과정이 명문화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방영중인 TV 드라마 '조선시대 여형사 다모'는 조선의 수사활동에 대한 신선한 관심을 일으키며 동호회원이 3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의 과학적 수준이 지금에 비하면 일천했음에도 꽤 근거 있는 과학적 방법도 동원됐다.조선의 검시 '신주무원록'의 사례별 검시방법을 보면,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을 물에 빠뜨려 사고사로 위장한 것을 가리는 항목이 있다. '산 채 물에 빠져죽은 사람은 양 손은 주먹을 쥐었으며, 입과 코 안에 물거품과 약간 맑은 빛의 핏자국이 있고, 죽은 뒤 물에 던져진 경우 입과 코에 물거품이 없다'는 내용이다. 흰 거품은 지금도 물에 빠진 당시의 생사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단서.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물에서 호흡을 하면 물이 허파까지 흡입돼 정맥의 공기와 섞여 독특한 흰 거품을 만들어 낸다"며 "흰 거품은 물 속에서 숨을 쉬었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설명한다. '주먹 쥔 손'도 빠진 사람이 무의식 중 무언가 붙잡으려 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죽음을 당한 뒤 목매달아 자살한 것으로 위장한 사례도 있다. 최근에도 드물지 않다. 이 교수는 "몸의 요해부위(중요한 부위) 손상을 살펴보라는 지적은 지금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살아서 가격을 당하면 정상적인 심장반응으로 출혈이 일어나 피가 고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인인지 살펴야 한다. 반대로 자살이라면 '혀가 이에 닿을 정도로 나온다'는 것은 목을 맬 때 혀뿌리가 닿아있는 설골이 부러지면서 흔히 일어난다.

독극물을 검사하는 반계법(飯鷄法)도 흥미롭다. 반계법이란 독살이 의심되는 시신의 입에 찹쌀밥을 머금게 했다가 닭에게 먹여 닭이 죽는지를 살피는, 일종의 동물실험. 이는 현대에도 독극물의 예비검사로 활용된다. 시신의 위 내용물을 쥐에 먹여보아 이상이 나타나면 어떤 종류의 독성물질인지 본격 조사에 착수한다.

그런가하면 얼토당토 않은 미신도 혼재한다. 중국 원에서 전해진 내용으로 물에 빠진 시신의 경우 남자는 엎어져 있고 여자는 하늘을 보고있다는 내용이나, 친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의 유골에 피를 떨어뜨려보아 스며들면 친자라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현대의 법과학 오늘날 부검은 사인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체 한 구에 30분∼3시간동안 뇌 목 가슴 배와 사인이 될만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치명적 상처 여부는 물론, 몸 속에 고인 피를 떠서 치사량인지 측량해 보고, 조직검사 등이 필요한 부위는 따로 떼어놓는다. 최근엔 다른 과학분야의 발전도 눈부셔 법의학을 넘어 법과학(forensic science)으로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1980년대만 해도 친자나 신원확인을 위해 ABO식 혈액검사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유전자 감식이 독자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머리카락 한 올만 있어도 신원과 친자관계를 99.9%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같은 대형재난이 일어나면 예전엔 따로 떨어진 팔 다리 일부는 확인할 엄두도 못 냈지만 이제는 DNA 검사로 온전한 시신을 찾을 수 있다.

미량의 물질을 검출해 내는 독물학 분야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단 한번 마약을 하고 몇 달이 지나 혈액이나 소변에선 전혀 검출할 수 없어도 당시 만들어진 머리카락 세포를 분석하면 미량의 마약성분을 검출할 수 있다. 물 1,000톤에 섞인 1g의 물질을 검출할 정도다.

제도는 조선보다 못하다? 그래도 '사인미상'은 여전히 일어난다. 수 년 전 아내 살해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례는 '산 사람을 잡은' 경우다. 부부싸움 후 남편이 아파트를 나간 새 아내는 베란다에서 목을 맸고, 떨어지면서 머리에 외상을 입었다. 시체를 부검한 지역의 공의(일반 개업의로서 경찰서에서 위촉한 부검의)는 머리의 출혈에 주목해 '타살' 소견을 냈고, 남편은 형량을 감하려 허위 자백을 했다. 그러나 경험 있는 법의관이 보기에 머리의 출혈은 두개골을 절개할 때 나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사실은 항소심을 맡은 관선변호사가 국과수에 감정서를 보여 극적으로 밝혀졌다.

법의학자들은 이러한 오판이 법의관을 의무화하지 않고 어떤 의사라도 부검을 할 수 있게 한 제도적 문제와 결부돼 있다고 지적한다. 경북대의대 법의학교실 채종민 교수는 "시체의 발굴은 반드시 법의학자, 법치의학자, 법의인류학자, 방사선학자 등이 참여하여야 하지만 지금도 의사의 참여 없이 경찰이 포크레인을 동원해 시체를 발굴한다"며 "이래서야 국민의 인권이 보장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미국의 경우 법의관 양성과정이 따로 있고, 일본은 의대에 법의학을 의무화한 반면 우리는 고작 8개 대학의 법의학교실이 있고, 현장에는 법의관이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제도적 측면에선 조선보다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문국진 고려대의대 명예교수는 "고을 사또(군수나 현령)가 한번 검시를 하면, 이웃의 사또가 재차 복검(復檢)을 했고,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 세번, 네번 이어졌다. 또 검시 잘못이 드러난 사또는 삭탈관직 당할 수도 있었다"며 "지금도 그 정신만은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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