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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몽헌 회장과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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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몽헌 회장과 8월

입력
200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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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하고도 가벼운 죽음이 있다. 천수를 누리신 할머니는 "나 이제 간다"고 했다. 말라서 가벼워진 몸은 무섭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무욕했다. 그렇게 무욕한 몸에 무슨 미련이 남아있을까. 어떠한 미련도 없이 떠난 할머니처럼 장례식은 가뿐했다.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몸은 가볍지 않았다. 67세, 세상을 떠나기에는 아까운 나이었다. 장례식의 모든 절차는 눈물이었다. 우리의 눈물이 아버지의 미련이었을까. 우리들은 울고 또 울었다. "오호라, 나의 몸이 풀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는 뜻이 아버지의 영전에 닿을 때까지.

갑작스런 죽음은 충격이다. 떠난 자가 던지고 간 충격은 남은 자의 삶을 바꾼다. 그 충격은 무상의 깊이에 침잠케 해 생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인도하는 길라잡이가 되기도 한다.

이달 초, 정몽헌 회장이 먼 길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나이, 너무 아까운 상황이었다. 몸이 '나 이제 간다'고 말하기 전, 아직도 에너지가 충만한 몸의 뜻을 뒤로 한 채 몸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무거운 마음은 얼마나 비장한 것일까. 상황은 그렇게 충격적인데 남은 유서는 오히려 담백하고 정갈하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와 인연이 없는 나이건만 그 '어리석은 행동'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고 아프다. 이것은 슬픔인가, 아픔인가. 그의 죽음을 두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네 탓"이라고 어리석고도 치열하게 싸우는데 정작 그는 주변을 탓하지 않고 모든 일을 스스로 어리석다고 자기자신에게로 돌렸다. 그의 됨됨이였다. 목숨을 걸게 되기까지 그가 왜 할 말이, 탓할 사람이 없었겠는가. 전 재산을 북한에 줘도 아깝지 않다던 아버지 때부터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쏟은 대북사업이 구설에 오르고 뒤틀리고 마침내 사법부의 심판의 대상이 된 데 대해. 역사적인 사건이 그 차원을 따라오지 못한 사법적인 차원으로 환원되어 심판되는 것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식적인 유서에서는 아무 탓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접고 대북사업에 전력을 쏟아달라는 긴 여운의 문장만 남긴 채 돌아올 수 없는 길, 먼 길을 떠났다.

사실 현대의 대북사업은 이익이 목적일 수 없는 사업이다. 고향을 가는데 왜 중국을 통해 돌아가느냐고, 판문점을 열고 '바로' 가겠다는 정주영씨의 뜻에서도 드러나지만 그 사업은 이익보다는 대의명분에 따른,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라면 결행하기 힘든 사업이다. 대의명분에 따라 판문점의 문을 열기 위해 현대는 엄청난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냉전체제를 뛰어넘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우리가 아직도 8월의 해방을 기념하는 것은 외세에 의해 짓눌렸던 민족공동체를 상기하면서, 지금 절실한 민족의 과제를 상기하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통일의 노래가 꿈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교류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교류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업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외세의 감시눈초리 속에서도, 서해교전의 총포가 울리는 중에도, 국내의 수구세력이 "퍼주기"라고 비난하던 중에도 중단 없이 진행된 사업이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공동체가 해야 할 사업을 대행한 것이었다. 당연히 대행을 제도화시켜야 한다. 한 기업, 한 사람에게 지웠던 짐을 우리 모두 함께 짊어지면서 짐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의 짐은 가벼운 법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의 과제다. 대북사업에 전력을 쏟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일로 가는, 미미하지만 중요한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한다.

이 주 향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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