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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바리공주

입력
200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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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지음 열림원 발행·8,500원아버지의 병을 고치려고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불사약을 얻는다. 참 효성스러운 딸이 아닌가. 우리 전래의 바리공주 설화는 이렇게 알려져왔다. 일곱번째 자식마저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졌던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그러고도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리자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일곱번째 공주 뿐이라며 15년이 지나서야 찾으러 온 게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는 도드라지지 않았다.

시인 김선우(33·사진)씨가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를 냈다. 그는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에서 풍요롭고 성애(性愛)가 넘쳐흐르는 여성의 몸, 여성성을 언어로 옮겨 주목받은 시인이다. 그의 어머니의 상처는 바리공주의 어머니 길대부인보다도 잦아서 "남아를 생산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불문율 속에서 아홉 번의 산고를 치러야 했다." 그 어머니의 많은 딸 가운데 하나인 김씨가 쓰는 '버려진 딸'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시적인 문장이 치열하다. 바리공주가 피리 부는 장면, '두 손으로 살풋 쥔 짙푸른 동백나무 잎사귀가 붉은 입술 사이를 칼끝처럼 가르는가 싶더니 구슬프고 비장한 소리를 뿜어올렸다.' 아름답고도 처연한 묘사다.

김씨는 바리공주 설화에서 버려진 자식에게 뒤늦게 손 내미는 아버지를 향한 한스러움과 갈등, 고행 속에서 하나하나 체득하는 인생의 진리, 육체의 환희를 통해 여성성을 깨닫는 체험 등을 찾아낸다. 그의 글에서 바리공주는 도식화한 효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아낙이다.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한숨을 쉬고 울먹이며 주저앉는다. 그러나 김씨는 '버려도 버릴 것이고 던져도 던질 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바리공주의 이름에서 '버려짐으로써 사랑을 얻은 존재'를 발견한다. 작가에게 그것은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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