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버들이 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아름다워 '능라도(綾羅島)'란 이름이 붙은 대동강의 섬, 민요 '양산도'에 '대동강 굽이쳐서 부벽루를 감돌고 능라도 저문 연기 금수산에 어렸네'로 나오는 섬. 조선시대 명 문장가였던 석북 신위가 '관서악부(關西樂府) 108곡'에서 '푸른 풀 흰 모래밭이 꽃자리 옮겨 놓은 듯 아늑하다'고 한 이 아름다운 섬에서 한 소리꾼이 소리를 한다.흰 두루마기차림에 갓을 쓴 채 고수를 향해 부채를 치켜 든 소리꾼, 그 소리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오른손 북채를 높이 들고 진지하게 명창에 화답하는 고수의 진지한 소리 교감은 대동강의 절경을 무색케 하고, 능라도를 지나던 뱃사람들을 멈추게 한다.
이 그림은 평양을 그린 지도다. 조선 시대에는 주요 도시와 명승지를 그린 그림지도가 유행을 했는데, 열 폭의 '평양도' 병풍은 특별히 풍속화적 내용이 포함돼 있는 데다 실존했던 판소리 명창 모흥갑(牟興甲)의 실명(實名)을 기록한 유일한 그림이라는 점에서 음악사적 가치가 크다.
판소리 명창 모흥갑은 판소리가 대중예술로 각광을 받기 시작할 무렵, 가왕(歌王)으로 꼽힌 송흥록(宋興祿)과 자웅(雌雄)을 겨루며 당대의 명창으로 활약한 소리꾼이었다. 그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판소리 잘 하는 것을 '모송(牟宋, 즉 모흥갑과 송흥록)에 견줄 만 하다'라고 평가했으며, 판소리 '춘향가' 창본(唱本)에 '당시 명창 누구런고 모흥갑의 적벽가며 송흥록의 귀곡성과 주덕기 심청가를 한창이라 노닐적에…'가 가사로 포함될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평양도의 한 장면에 모흥갑이라는 소리꾼이 연광정이나 을밀대의 대동강 풍경처럼 그림 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 것도 그가 누린 명성과 관계가 깊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스친다. 한 관리가 있었다. 그는 누구나 부러워 할 평양감사로 부임해 아름다운 데다 부귀(富貴)까지 겸한 천하 제일강산의 관리 노릇을 하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자 화공을 불러 그림을 청했다. "무엇을 그릴까요"라고 묻는 화공의 말에 그의 머리에는 선가묘무(善歌妙舞·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기)로 이름난 서도 명기들의 공연과 대동강의 밤뱃놀이 같은 화려한 날들도 떠올랐지만, 이내 "내 평생 잊지 못할 소리 감동은 능라도를 사로잡은 명창 모흥갑의 소리였노라"고 대답했다. 관리의 속마음을 헤아린 화공은 수려한 평양 경관 속에 호남에서 온 적벽가의 명창 모흥갑을 쏙 닮게 그리고 그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명창 모흥갑'이라고.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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