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 대표이사 해임권고, 유가증권 발행제한 12개월, 영화회계법인 과징금 3억원…'20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SK글로벌 감리결과 조치 내용이다. 검찰이 SK분식회계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 3월 11일이었으니 실로 5개월 여 만에 감독당국의 행정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검찰 수사에다 회계법인 감사, 채권단 실사 등으로 이미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와 수법은 전모가 드러난 상태다. 남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을 처리(감리)하는 데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우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구나 해당 법인의 대표이사(손길승 SK그룹 회장)가 공식 사임까지 한 마당에 나온 조치이고 보면 '뒷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손회장이 20일 현재 등기부 등본상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해임권고는 유효하다"는 당국자의 설명을 들으면 실소마저 나온다. 사실 이번 조치가 나오기까지 과정을 짚어보면 감독당국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감원이 감리에 착수한 것은 3월이다. 분식회계 규모로 볼 때 규정상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늑장을 부리던 금감원은 감리착수 넉 달이 지난 7월 23일에야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재안건을 상정했다. 그러나 제재결정은 돌연 연기됐다. 엉뚱하게도 "회계법인 제재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다시 한 달을 더 검토한 끝에 나온 결론이 약발마저 의문시되는 '대표이사 해임권고'인 셈이다.
이정재 금감원장은 평소"감독정책도 경기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며 금융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SK글로벌 처리를 지켜보노라면 이 위원장의 지론이 행여 재계나 정치권의 눈치보기, 타협적인 금융제재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변형섭 경제부 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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