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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5>게이트의 사슬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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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5>게이트의 사슬 ⑧

입력
200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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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현씨가 불법대출 및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쫓기고 있을 무렵인 2000년 11월 어느 날. 국정원의 안가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1010호실에서는 김은성 국정원 2차장과 정성홍 과장, 진씨 회사인 MCI코리아의 회장 김재환씨 등이 모여 진씨 구명 대책회의를 가졌다. 한참 입씨름이 오간 끝에 일단 진씨를 검찰에 내보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이어 누군가가 테이블 위에 노란 색 바탕에 26칸의 줄이 쳐진 편지지 한 장을 펼쳐놓았다. 권노갑 김홍일 김홍업 신광옥 정형근…' DJ의 장·차남과 권력실세를 비롯, 여야 정치인과 법조계 유력인사 30여명의 명단이 있고, 이름 옆에는 억대 단위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진씨의 손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진씨 돈을 받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만들어진 가짜 '진승현 리스트'였다.

진씨에 대한 주가조작혐의 수사과정에서 김은성 차장이 대검 고위간부 2명을 찾아간 사실이 알려진 2000년 11월부터 검찰 내에서는 김 차장 관련설이 나돌았다. 당시 김 차장은 "딸과의 혼담 때문에 진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지만 몇몇 검찰 관계자의 입에서는 "국정원 2차장이면 대단한 자리인데 함부로 진씨를 손 댈 수 있겠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검찰 수사망이 이처럼 김 차장과 국정원을 향해 좁혀오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가짜 '진승현 리스트'다. 정확히 말하면 '김은성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진씨의 검찰 출두에 대비,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한 최후의 카드였다. 김 차장은 당시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 검찰 고위간부를 만나 이 리스트를 내밀고 담판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사할 수 있겠오? 자칫하다 정권이 넘어갈 수 있어요." "…"

가짜 리스트의 위력 탓인지 당시 김재환씨 등의 검찰 조사과정에서 김 차장의 이름이 튀어나왔지만 진술조서에는 기재되지 않았다. 검찰수사는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선 손도 대지 않은 채 진씨를 금융비리로 구속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결국 김 차장이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지위를 이용, 일종의 공작 차원에서 검찰수사를 막은 셈이다.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이 진씨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주고 수억원을 챙겼다'는 소문이 검찰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의 귀에 들어간 것도 이 무렵의 일. 내막을 잘 아는 국정원 관계자 A씨의 증언. "진씨 사건이 나기 전에는 김 차장과 신 수석, 김각영 서울지검장을 축으로 하는 '3각 라인'이 잘 작동했다. 그런데 김 차장의 진씨 구명로비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신 수석이 검찰에 '진씨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진씨 사건이 금융비리로 마무리되자 김 차장은 신 수석의 뒷조사를 시키고 검찰쪽에는 '신 수석이 수억원을 받았다'는 말을 흘렸다."

가짜 '진승현 리스트'는 1년 뒤 또다시 등장한다.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맨 먼저 걸려든 고위 인사가 법무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신 수석이었다. 중앙일보에 1억원 수수설이 대서특필된 뒤 신 수석은 진씨의 로비스트인 최택곤씨로부터 2,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다. 진씨 돈을 받은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후 30명에 가까운 정치인 이름이 흘러나와 그 내용의 진위 여부를 헷갈리게 하면서 검찰수사를 교란시켰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얘기. "진승현 리스트를 토대로 김 차장이 별도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 내용을 흘린 것으로 안다. DJ의 두 아들 등 검찰이 손 대기 어려운 인물을 끼워넣고, 실제 진씨에게서 후원금조로 돈을 받은 인물도 일부 포함시켰다. 검찰수사를 막고 진씨 리스트의 진위를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김 차장은 검찰조사에서 "리스트를 작성한 사실도 없고 정·관계 및 수사기관에 압박을 한 사실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김 차장에 대해 감찰조사를 벌였던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 L씨는 "김 차장이 그것(리스트)을 가지고 꽤 폼을 잡았다. 기업에도 공개장부가 있고 비밀장부가 있지 않느냐" 고 말했다. 김 차장이 공개장부, 즉 가짜 리스트를 활용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신 전 수석의 설명. "검찰수사를 받은 한참 뒤에 안 일이지만 처음 1억원 수수설을 흘린 사람이 김은성이더라. 리스트도 김은성이 만들어 돌리지 않았나." 김대웅 당시 서울지검장의 설명도 비슷하다. "진승현 리스트는 없다. 처음에 진승현과 김재환 등이 수사를 막기 위해 권력 실세를 끼어넣어 만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리스트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씨 구명과 검찰수사 방해를 위한 국정원의 공작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검찰 관계자의 얘기. "수사검사가 워낙 완강하게 구속수사를 고집한다는 얘기가 들리자 수사를 맡은 L검사와 대학 동창인 국정원 직원에게 L검사를 불러내게 한 뒤 진씨를 불구속수사토록 회유했다." 또 수배중인 진씨에게 국정원 직원 2명을 붙여 검찰수사관들이 진씨를 검거하려하자 도피를 도왔던 일도 있었다. 검찰을 담당한 국정원 직원은 수시로 수사상황을 김 차장에게 보고했다. 모두 1년 뒤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검찰수사 방해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당시 검찰을 출입하던 국정원 직원들은 '손 볼 검사'의 이름이 적힌 '살생부'까지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지검 특수2부도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로부터 "금감원 검사를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국정원 김형윤 경제단장에게 5,500만원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놓고도 10개월 후 동아일보에 보도되기 전까지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씨가 김은성 차장에게 1,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도 묻혀졌다. 김 차장이나 김 단장과 가까운 검찰 고위간부의 압력 탓이었다. 당시 특수2부 L부장은 수사를 막기 위해 수사기록까지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아 수사검사가 "나중에 후배 검사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부끄러운 줄 알라"고 거칠게 반발했을 정도였다. 당시 특수2부 검사들이 "국정원 간부 하나 못잡아 넣을 바엔 그만 두겠다"며 매일 저녁 술을 마시며 L부장을 성토했던 일은 검찰 내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국정원 물밑암투 "陳게이트"로 표면화/ 신건-김은성 "파워게임"

신건 국정원장이 부임하기 직전인 2001년 3월 하순, 국정원에는 '하극상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성홍 기관과장이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된 일로 김은성 2차장과 함께 감찰조사를 받자 감찰실장 L씨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정 과장은 감찰과정에서 개인 비리와 여자 문제까지 불거지자 "감찰실의 불법도청을 잡기 위해 일부러 던진 미끼였다"며 오히려 "불법도청을 문제 삼겠다"고 L씨에게 역공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 아래에서 전개되던 국정원 내의 '김은성 사단'과 이를 견제하던 세력의 알력이 '진 게이트'를 계기로 표면화한 것이다.

국정원 감찰실이 김 차장 등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것은 진씨 구명로비를 벌인 MCI코리아 회장 김재환씨가 2001년 1월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부터. 내사가 진행되는 동안 김 차장과 정 과장의 김씨 폭행사건이 터졌고 이 일은 즉각 감찰실에 포착된다. 감찰실장 L씨는 김 차장과 정 과장의 진씨 비호활동 및 비위 내용을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보고했지만, 보고 내용은 김 차장에게 흘러갔고 김 차장은 이를 다시 정 과장에게 알려주었다. 오히려 L씨가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후 신 원장이 부임하자 L씨는 재반격에 나선다. L씨의 증언. "김재환씨를 불러내 증언을 들은 뒤 김 차장과 김재환의 일이 밖으로 나가면 큰일이다 싶어 내부기강을 잡는 차원에서 신 원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이를 안 김 차장은 "나와 L씨중 한명을 택하라"며 신 원장을 압박했다. 이 일은 L씨를 광주지부장으로 좌천시키고 정 과장을 한직인 정보관리부 과장으로 밀어내는 선에서 봉합된다.

당시 내막을 잘 아는 국정원 관계자의 얘기. "신 원장은 '김은성 사단'의 전횡을 보고 받았지만 부임한지 얼마 안된데다 김 차장의 파워가 막강해 손 댈 수 없었다. 신 원장은 DJ의 둘째 아들 홍업씨와 가까웠지만 김 차장은 DJ 장남 김홍일 의원을 배경으로 뒀다. 또 김 차장은 신 원장의 뒷조사는 물론 신 원장의 사돈기업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여 신 원장의 약점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니 신 원장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7개월 뒤 한국일보의 김씨 폭행사건 보도를 계기로 김 차장과 정 과장이 사표를 내면서 국정원의 파워게임은 신 원장의 승리로 귀결된다. 정 과장은 사표를 낸 직후 신 원장과 L씨를 겨냥, "김 차장과 나를 제거하기 위해 치밀하게 짠 사건"이라면서 "그 간부(신 원장)도 진씨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물귀신 작전을 펴기도 했다.

/이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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