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족보가 확실한 숲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576년 전인 세종9년(1427)에 청하현감 민인(閔寅)이 바람을 막고 홍수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성한 숲으로 지금은 경북 포항시 청하중학교 학교숲이 돼있다.이 숲은 동해안에서 내륙쪽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이자 청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수해방지림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숲의 어린 소나무는 동량감 재목으로 훌쩍 커버렸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려면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데, 이 숲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산군 및 고종 때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탐관오리가 이 숲을 벌채하여 훼손하는 등 몇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 약 3만여 평에 달하였던 숲은 현재 2,000여평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800여 그루의 소나무는 다행히도 잘 가꾸어져 2001년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숲'으로 선정되었다.
청하중학교 담을 따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소나무숲은 수령이 대략 80∼200년으로, 가슴높이의 나무 지름이 60㎝가 넘는 큰 것에서부터 20㎝가 겨우 되는 작은 것까지 매우 다양한 크기의 소나무가 초승달 모양으로 교정을 길게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숲을 관덕관송전(觀德官松田)이라 불렀는데, 관덕은 이곳의 옛 지명이며 관송전은 관에서 조성한 솔밭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소나무숲을 봉산, 황장봉산, 송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특별히 관리했는데, 이 중 해변가나 섬에 지정한 솔밭을 송전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야 관청에서 관리하였으므로 관송전(官松田)이라 해야 옳겠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이 숲을 관리하니 학송전(學松田) 또는 역사성을 간직한 관송전(觀松田)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관송전의 가치는 바닷바람이나 물의 피해를 막아주고 목재로 쓰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청하읍내에 세워진 많은 건물들이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청하천 제방도 더 이상 범람하지 않는다. 또 값싼 수입 목재가 이미 국내 목재소비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관송전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욱 값진 역할을 맡고 있다.
관송전은 이 학교를 거쳐간 많은 학생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교육의 터전이었으며 놀이 장소였다. 콘크리트 교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있다가, 그것도 모자라 땀 흘려 운동한 후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 도시 학생들과는 달리 이 곳 학생들은 놀다 지쳐 쉬고 싶으면 관송전 숲속으로 들어간다. 솔잎은 햇볕을 막아 그늘을 제공하고 솔바람은 어느새 학생들의 땀을 식혀준다.
학생들은 관송전을 쉼터의 공간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이 숲에서 자연을 배운다. 2,000여평에 자리 잡고 있는 800여 그루의 소나무와 교정의 꽃들은 저절로 크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으며 잘 자라도록 물주고 땀흘려 돌보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관송전은 학생들과 함께 커가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관송전을 닮아간다. 이 숲을 지키고 가꾸어 온 이삼우 선생님(청하중학교 이사장)은 숲이 사람을 키운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학교숲과 마을숲을 보호하고 계승하는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안목과 심성을 갖고 있는데, 학생들과 마을주민들이 매일 접하는 공간인 학교숲과 마을숲을 잘 가꾸어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성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숲이 있는 아름다운 학교'라는 경영방침을 갖고 있는 학교, 그 속에 있는 관송전은 사람이 숲을 만들고 숲이 사람을 키우는 대표적인 학교숲이라 할만하다.
배 재 수 임업연구원박사 forestory@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