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폐막된 제7 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애니마시아 행사에서 김준기(30) 감독의 '인생'이 단편영화 경쟁부문 대상(상금 1,000만원)으로 선정됐다. 장편영화부문 대상은 홍콩 토에 유엔 감독의 '맥덜의 인생'이 받았다. 올 초 안시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애니마시아는 41개국에서 장·단편 668 작품이 경쟁을 벌인 국제만화영화제. 이 가운데 25개국 107작품이 공식경쟁부문 본선에 진출, 우열을 가렸다. '인생'은 등짐을 지고 끊임없이 돌기둥을 오르는 아버지와 그 뒤를 잇는 아들의 모습을 통해 열심히 사는 이들의 평범한 삶을 잔잔하게 그린 9분50초짜리 3D애니메이션. 이 작품은 예선 때부터 심사위원 데이빗 얼릭(미국·다트머스대 교수) 으로부터 "35개국에서 나온 단편 애니메이션 462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아 수상이 예견됐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의 길이 보여서 3D를 선택했다"는 젊은 감독을 만나봤다. 한국도 몇 년 뒤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부럽지 않은 대중적인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을 갖게 될 거라는 희망을 주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수상을 축하한다.
"음악을 빼고 모든 것을 혼자 작업하다 보니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관객들이 작품을 재미있게 봐준 점이 수상에 도움이 된 것 같다. 관객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나.
"공주대 만화예술학과를 나왔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애니메이션을 독자작업으로 계속해왔다. 95년에 만든 첫번째 작품 '생존'이 제1회 SICAF에서 상을 받으면서 계속할 힘이 생겼다. 2001년에 만든 세번째 작품 '등대지기'는 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다. 이번이 네번째 작품이다.
―특별히 3D 를 좋아하는가.
"2D는 작업하는 사람이 많아야 하지만 3D는 컴퓨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좋다. 나도 처음에는 2D로 작품을 만들었다.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3D를 배웠는데 이걸 하면 단편 애니메이션을 혼자서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3D를 써본 것이 세번째 작품인 '등대지기'이다. 이번에 '인생'까지 3D로 하고 보니 장편도 만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편을 준비중인가.
"동료들과 작업중이다. 줄거리만 대충 구상한 정도인데 2년 내 영상화할 생각이다. 장르는 '오리엔탈 어드벤처'다. 애니메이션 하면 어려서부터 떠오르는 단어들이 '모험' '보물' '공주' 이런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애니메이션이 요즘 없다. 그런 걸 만들려고 한다. 자금이 모여야 장편을 만든다고 하지만 미리 구상해두면 훨씬 적은 제작비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준비중이다."
―한국은 단편 애니는 강한 반면 장편이 약한데…(한국은 이미 2002년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단편작품 모두가 우수하다는 평을 받아 '코리아스페셜프라이즈'라는 단체상을 신설했을 정도이다.)
"대중의 마음을 끌어내는 이야기구조가 약한 것이 문제다. 최근에 '고양이의 보은'을 봤는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도 저런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면 좋겠더라. 유치해서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고 어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이다. 잔인하지 않고 사람 죽일 필요도 없으면서 모험이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디스토피아의 세계도 좋고 작가주의도 좋지만 그런 작품으로 인해 '(국내창작) 애니메이션은 돈 주고 볼 게 못 된다'는 소리가 나온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실험이나 예술성의 추구에만 머물지 말고 관객들에게 예뻐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제작비는 어떻게 대나.
"95∼99년 게임회사에 다닐 때는 월급을 제작비로 썼고 퇴직금을 받아서 '등대지기'를 만들었다. '등대지기'로 받은 상금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사전제작지원금 1,000만원을 받아 이번 작품에 투입했다."
―그럼 이번 상금은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쓰는가.
"물론이다. '더 룸'(The Room)이라고 샴쌍둥이 로봇을 다룬, 코믹한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쓸 예정이다."
―광고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진 않는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작품에 충실할 수 없다. 전업작가의 길만 가려고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클 텐데.
"제대로 된 장편 애니메이션이 나오려면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줄거리 창안부터 편집까지 제작과정 전체를 총괄하는 훈련을 받은 작가들이 많아져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았지만 한국에서는 단편 애니만 하고 살기 힘들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사전제작지원이나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이 있지만 연간 10∼20 작품 정도이다. 좋은 작가들이 많은데 단편 애니 한편 만들기도 힘들기 때문에 저변 확대가 안 된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하고 지원할 방안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자주 보여주고."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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