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문화일보에서 6년 동안 기자생활을 한 바 있다. 이때 잠시 동안이었지만 우리나라 초창기 신문 시사 만화계의 '대들보'라 불렸던 안의섭, 김성환 두 선생과 한 지붕아래서 근무했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두 원로작가는 1992년부터 2년간 4칸 시사만화 '두꺼비'(1991.12.6∼1994.8.3)와 '고바우'(1992.10.1∼2000.9.29)를 문화일보 지면에 함께 게재했다. 두 사람은 논설위원실이 있는 신문사의 꼭대기 층에 방이 나뉘어져 있었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서로 치열한 '작품 경쟁'을 했다.고 안의섭(1924∼1994) 선생은 김성환(71)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신문 시사만화분야를 일궈온 1세대 시사만화작가로 꼽힌다. '두꺼비'와 '고바우'는 한국전쟁 이후 수 십년 간 신문 시사만화의 양대산맥이었다. '고바우'의 풍자가 정중동(靜中動)의 은유적 묘사였다면, '두꺼비'는 활발하고 거칠 것 없는, 육두문자(肉頭文字)도 서슴지 않는 직설적 풍자로 독자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두꺼비'의 전성기는 한국일보에 연재했던(1973.7.6∼1989.2.16) 16년 간이었다. 당시에는 한국일보라면 으레 '두꺼비'를 연상했을 만큼 인기절정을 구가했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의 후반기였던 1986년 1월16일자 한국일보의 '두꺼비'. 서슬 퍼랬던 신군부 정권을 향해 두꺼비는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미국대통령 레이건이 종양을 앓고 있는 등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외신뉴스가 전해진 가운데, 전두환 각하께 보내는 레이건 대통령의 편지 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 만화였다. 편지내용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대통령각하, 오래오래 사십쇼! 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듭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레이건"
이 만화는 신군부 세력의 심기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결국 안 화백은 연재를 중단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사건 직후인 86년 2월13일자 홍콩의 '파이스트 이코노믹 리뷰'지는 이 필화사건을 상세히 전하면서 정권을 맹비난하기도 했다. '두꺼비'는 이후 1년7개월 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1987년 8월25일에야 한국일보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안 선생의 시사만화 역정은 누구보다 험한 가시밭길 투성이었다. 독자들이 속 시원해 하는 직격탄식 풍자일수록 정권에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시사만화 '두꺼비'는 1955년 4월1일 경향신문에서 고 김경언(1929∼1996) 선생의 그림으로 처음 연재가 시작됐다. 그러나 연재 석달 만에 창작을 중단하자 신문사측이 안 화백에게 요청, 바통을 이어받게 했다.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거쳐 한국일보에서 두꺼비는 풍자의 꽃을 활짝 피운 뒤 문화일보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두꺼비의 전성기였던 1960·70년대에는 안 화백도 사회저명인사로 활동, 당시 최정상의 인기 라디오프로 '재치문답'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1994년 8월3일자 문화일보 시사만화 '두꺼비'를 막 출고한 뒤, 그는 갑자기 쓰러졌다. 업무상의 과도한 스트레스와 지병인 당뇨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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