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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70>닭의장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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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70>닭의장풀의 비밀

입력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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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서 눈여겨보지 않은 꽃,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서 친근하게 생각하는 식물이 '닭의장풀'이 아닌가 싶습니다. 닭의장풀은 흔히 '달개비'라고 부르는 식물을 말합니다.예전엔 대개 마당 한 구석에 닭장이나 토끼장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잎 모양이 닭벼슬 같아서 얻은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지요. 닭장이라고 하면 진짜 닭장보다 시위하다가 잡혀가는 창문 막힌 버스를 떠올리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닭의장풀을 그리 귀히 여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이 식물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요즘 이 식물의 꽃이 한창입니다. 다소 주름진 남빛 꽃잎 두 장이 부채살처럼 퍼지고 그 가운데 선명하게 드러나는 샛노란 수술이 자리 잡아 마치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닭의장풀 꽃의 꽃잎(본래는 꽃받침과의 구분이 없으므로 '화피'라고 부릅니다)은 3장입니다. 그 가운데 두장은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인 반면 나머지 한장은 작고 반투명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화피가 구태여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사람들에게 닭의장풀 수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운데 쪽에 남색 꽃잎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가운데 노란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수술은 맞지만 꽃밥은 묻어 있지 않으니 제 구실하는 진정한 수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멀리서도 곤충의 눈에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색은 연하지만 앞으로 길게 튀어 나온 두개의 수술에 꽃밥이 생겨, 안쪽의 짙은 노란색을 보고 돌진하는 곤충의 어느 부분엔가 묻게 되지요. 이 화피와 수술은 보트모양의 포가 싸고 있습니다. 작은 꽃을 가지면서도 이토록 화려한 구성을 하고 있는 식물이 어디 흔하랴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닭의장풀의 비밀은 꽃봉오리가 벌어져 꽃이 피었을 때 이미 90% 이상의 꽃들이 자신의 꽃가루로 수분을 마친 상태라는 것이지요. 만일 지난 주에 소개해 드린 제비꽃들의 폐쇄화처럼,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가수분을 한 것이라면 왜 구태여 꽃잎을 펼쳐 꽃을 피워냈을까요? 애써 찾아간 곤충들만 허무하게 말입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이 꽃을 기르면서 꽃이 피는 대나무라 하여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옛 사람처럼 이 푸른 꽃잎은 비단을 물들이는 호사는 아니더라고 우리가 이름이 주는 선입견에 가려 비밀에 쌓인 식물 하나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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