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빨래를 차곡차곡 개서 장에 넣으시죠, 밥 먹고 치우고 있으면 '밥 멀었냐' 하시죠, TV를 보고 현실과 혼돈해 소리를 지르시고, 그러다 손님만 오시면 얼마나 말짱해지는지 가족조차 저보고 거짓말쟁이라는 거예요.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고 울음이 북받치는지…." 처음 시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았던 1980년대 말만 해도 박덕규(62·국립암센터 호스피스)씨는 치매라는 병을, 치매환자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 여느 사람처럼 박씨도 '하필 내가, 큰 며느리도 아닌데, 왜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냐'고 가슴을 쳤고, 체중은 10㎏ 넘게 빠졌으며, 급기야 심장병까지 앓아 약을 대놓고 살았다. 이렇듯 치매는 환자 자신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정작 환자가 사망한 뒤에도 가족은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십상이다.
"환자를 쓸모없고 귀찮기만 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죠. 이 생각을 바꾸면 고통이 절반은 덜어집니다. 아무리 사고력이 떨어졌어도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씨는 친정어머니까지 도합 7년간 치매 병수발을 했다. 요령을 터득한다고 쉬워지는 일은 아니지만 박씨는 "사랑을 보이면 환자도 양순해진다"고 강조한다. 박씨도 처음엔 엉뚱한 행동에 조목조목 따지고, 설명하려 들었다. 나중엔 먹은 밥을 또 달라고 할 때 "국에 넣을 마늘 좀 까주세요"라고 주의를 돌렸다. 매일 "집에 가야한다"며 보따리를 쌀 때면 "내일 모시고 갈게요"라고 대응했다. 맞지도 않는 딸의 옷을 입고 나오는 어머니에게 "고운 옷이 입고 싶어요?"하고는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사드렸다. 커튼 뒤에 누가 숨어있다며 헛것을 볼 때는 아이 달래듯 꼭 안아주었다.
"매일 안아주고, 예쁘다고 말하고, 손을 잡아주세요. 세수도 할 줄 모르죠? 하지만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지는 잘 알아요. 함께 놀아주고 보살피면 아무데나 똥을 싸고 만지는 일도 거의 없어요."
박씨는 처음 치매 진단을 받고 당혹스러워 하는 가족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먼저 가족회의를 열어 간호를 치밀하게 설계합니다. 집안이 넉넉하면 좋은 시설에 모셔도 돼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는 건 환자를 불안하게 하니까 안 좋아요. 한 집에서 모시기로 했다면 다른 가족이 모두 도와야 해요. 아들, 딸, 첫째, 막내를 따지는 건 욕먹을 짓입니다. 돈을 내든지, 김치를 담가오든지.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주 간호자를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쉬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하루종일 환자에게 시달리는 주 간호자가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면서, 한국치매가족회의 모임에 참가하거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단기보호시설이나 자원봉사자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요령이다.
박씨는 "사회에서도 치매 환자와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집 잃은 노인에게 관심을 쏟는다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한국치매가족회 상담원과 호스피스 자원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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