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33·사진)씨는 1998년 아이오와대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IWP는 세계 각국의 문인들이 3개월 간 함께 생활하며 작품 창작, 토론, 낭독회 등 활동을 벌이는 문학교류 프로그램. 한씨는 세계 곳곳에서 온 시인, 소설가들과 자유롭게 교유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작가 김홍희씨의 사진이 함께 실린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 발행)은 5년 전의 그 경험을 담은 글모음이다. "IWP나 미국 여행에 대한 보고서는 아니고, 실상 문학에 대한 얘기조차 별로 없지만" 그때 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그러면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또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 것들에 관한 인상기다.
시 같은 소설을 쓰는 팔레스타인 작가 마흐무드 슈카이르에게서 그를 거쳐간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야. 사랑 없이는 고통 뿐"이라고 말하는 중년의 남자에게 젊은 여성 작가는 묻는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숙연하게 "아니지, 그렇지 않아"라고 답한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한강씨가 걸었던 뉴욕 8번가는 지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거리 같았다. 그 혼돈의 도시 아파트 베란다에서 홀로 아름답게 핀 붉은 제라늄 꽃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작가인 그에게 서점에서의 소설 낭독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놀랄 만큼 고요해진 객석에서 독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내내 눈물을 흘리는 여자도 있었다. 서울보다 숨쉬기 편안한, 그 풍요로운 문화의 공기에 한씨는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을 사랑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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