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 봐! 머게 머게." 둘째 손가락으로 건반을 꼭꼭 누르던 민(12·발달장애 2급)이는 "이제 동생 차례야"라는 자원봉사 선생님 말에도 대꾸가 없다. "(풍선아) 커져라 얍!" 하는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얍!" 외치는 아이들이 손을 힘껏 들어보지만 자꾸만 옆으로 쏠린다. 그때마다 자원봉사자의 정성스런 손길이 아이들을 도운다.풍선을 부는 것도, 율동을 따라 하는 것도 버거운 아이들이 방학인데도 학교에 모였다. 자폐증 발달장애 지체1급 등 제 머리론 상상도 못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창 틈 너머 부모의 애달픈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웃음을 온몸으로 지어 보인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 상인초등학교 5층에선 54명의 장애아를 위한 '재미난 학교'가 열리고 있다. 학교 이름을 제대로 말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지만 음악시간 체육시간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재미난 학교는 장애아를 둔 부천 지역 학부모들이 모여 만든 '장애아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회장 곽재현)' 주최로 4일부터 22일까지 이틀에 한번 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은 전문 교사와 장학사, 유치원 원장, 시민단체 회원 등이 맡고 있다. 산만하고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 지체 장애아의 특성 때문에 강사 외에도 4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아이 하나하나를 돌보고 있다.
미술 음악 체육 등 수업 시간표는 특별한 게 없지만 장애아에겐 수업 자체가 중요한 삶의 일부다.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방학이 비장애아에겐 달콤한 휴식이지만 반복학습이 중요한 장애아에겐 그 동안 배운 학습 내용을 몽땅 잃게 하고 오히려 뒤쳐지게 하는 40일의 악몽이다.
자폐증 아이를 둔 곽 회장은 "장애아들이 초등학교에서 비장애아와 함께 통합교육을 받고 있지만 방학이 되면 치료실이나 복지관 등도 방학에 들어가 온종일 집에 갇혀 지낸다"며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 적응하는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급하게 꾸린 임시 학교라 아이들에게 이름표 하나 달랑 달아주는 게 고작이지만 아이가 교실과 복도를 꾸준히 찾는 것만으로도 부모들에겐 고마운 일이다.
재미난 학교의 시작은 5월 장애아 학부모들의 작은 만남에서 비롯됐다.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특수교사 부족으로 매일 아이와 등교를 해 수업을 함께 했던 부모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방학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부천시에서 통합교육을 하고 있는 16개 초등학교 중 10개 학교 학부모 50여명이 모이자 당장 장소를 빌리고 강사 섭외에 들어가 재미난 학교를 열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아를 파악하기 위해 각 학교에 연락처를 부탁했지만 아동 정보 유출 때문에 거절 당하자 아이 보살피기 버거운 학부모들이 아파트 단지를 돌며 장애아 부모를 일일이 만났다. 자원봉사자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다 회원들이 1만원씩 내는 회비로 꾸리는 살림도 옹색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부모들은 모임 이름처럼 장애아의 미래를 위해 힘든 첫걸음을 내딛었다.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오전10∼12시 부모들은 아래층에서 장애를 극복한 어머니 이야기, 스트레스 해소 등 부모 교육을 받고 있다. 감추기만 해온 아이의 장애를 알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아이 돌보느라 쌓인 피로도 풀기 위한 자리다. 20일엔 가족과 함께 갯벌 체험을 떠날 예정이다.
학부모 조인자(39·여)씨는 "부모들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나 교육청이 주관하거나 학습 프로그램이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천=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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