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교육도 일종의 상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교육 상품은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창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것이 수 만대의 자동차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 하나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의 양을 우리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최근 해외로 유학과 어학연수를 떠나는 사람들이 해마다 증가하여 올해에만 교육을 위한 외화유출이 20억 달러, 한화로 약 2조4,000억 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울러 초·중등학생의 조기유학이나 교육이민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해외 유학과 어학연수 등으로 인한 외화유출도 문제지만, 사회 구성원들 간의 위화감이 조성되고, 가족 구성원들간의 이별로 인한 가정교육의 붕괴나 가정 파괴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좋은 교육 상품을 찾아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있다.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왔을 때 쓰는 표현이다. 누구나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 사실 그러한 노력이 개인이나 국가의 성장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의 의지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운명적인 것을 중시하는 귀속주의(歸屬主義)에 근거한 신분제도가 무너진 이후, 능력주의 또는 업적주의에 근거한 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면서, 좋은 교육은 곧 출세와 성공의 지름길이 되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농어촌에서 중·소도시로,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좀더 나은 교육 상품을 찾아서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이동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동이 이제는 조기유학, 유학, 어학연수, 교육이민의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개인의 도덕심이나 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 막으면 막을수록 위선과 편법과 탈법을 조장하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외국보다 더 좋은 교육 상품을 국내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 상품을 국내에서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수요자의 요구에 맞도록 다양화하고 특성화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필요하다면 외국의 교육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국내 교육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외국의 좋은 상품들을 국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 외국 상품과의 경쟁을 통해서 국내 교육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국가나 특정 교원단체에 의해 교육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가능한 한 공급자와 수요자의 자율성에 근거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교육상품들이 개발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에, 좋은 교육 상품이 있는 곳에 유능한 인재가 모이기 마련이며, 그 사회의 미래 또한 밝기 마련이다.
전국적으로 뚫린 고속도로는 농어촌을 버리고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더욱 가속화 시키듯이, 넓게 펼쳐진 하늘 길이 한국을 버리고 외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더욱 가속화 시키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농어촌의 교육이 더 피폐해지기 전에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나라의 교육이 더 피폐해지기 전에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백 순 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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